<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년, 캔버스에 유채, 260*325,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대중들이 영웅을 기대하는 것은 영웅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는 영웅을 탄생시키지만 영웅은 역사를 쓰지는 못한다. 역사는 민중들에 의해 이룩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고 있다.

들라크루아는 샤를 10세의 절대주의 체제에 반발하여 파리 시민들이 일으킨 소요 사태 중 가장 격렬했던 1830년 7월 28일의 장면을 사실주의 관점에서 표현한 것으로서 정치적 목적을 담은 최초의 근대회화다.

하늘을 덮고 있는 포화 연기 사이로 여인이 중앙에서 깃발을 들고 민중을 이끌고 있고 옆에 총을 든 어린 소년과 총칼을 높이 치켜든 사람들이 돌과 보도블록, 건축물로 세운 임시 바리게이트를 넘어 전진하고 있다. 어두운 하늘은 혼란스러운 대적 상황을 암시한다.

화면 오른쪽 포화 연기 사이로 노트르담 성당이 보인다. 혁명 당시 노트르담의 성당의 탑에 아침부터 삼색기가 꽂혔다.

여인은 프랑스 대혁명 당원이 쓰던 붉은 모자 프리지아를 쓰고 오른손에 삼색기를 들고 있다. 삼색기는 1789년 루이 16세가 봉기군의 적청색 모표를 자신의 흰색 문장과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고 있는 여인이 들고 있는 삼색기는 자유와 평등, 박애를, 총을 든 어린 소년은 프랑스 미래를 상징한다.

국민군으로 참여했던 들라크루아는 자유의 여신 오른쪽 모자를 쓰고 정장을 입은 채 총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인이 민중들과 다르게 옷을 벗고 있는데 여인이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자유의 여신을 상징한다. 자유의 여신은 고대 승리의 여신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한 것이다.

자유의 여신은 화면 앞 길거리에 방치된 시신에게 느껴지는 잔인함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실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 상황을 포착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요점을 확대시켜 사건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었다.

작품이 공개 되었을 때 벌거벗은 여인이 상징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1830년 혁명과 함께 최고의 지위에 오른 루이 필립의 마음에 들어 국가에서 구입했다.

들라크루아는 인물, 풍경, 정물,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인간의 내적인 감정으로 담아냄으로서 근대 회화의 기틀을 마련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들라크루아는 화가이면서도 잡지에 기고하거나 논문 또는 일기에 자신의 생각을 펼칠 정도로 뛰어난 문필가로 활동했다.

박세실/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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