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가수 지민주

노동가수 지민주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지민주가 포함된 걸 확인한 순간, 분노보다 앞선 건 “그래서?”라는 자문이었다. 왜 그랬을까? 분노가 작아서?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갖 비리와 부정이 터져 나왔다. 그 중 하나가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이었다. 문재인이나 박원순 지지자도 아닌 내가 블랙리스트에 들어간 이유는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는 서명 때문이다. 이처럼 정권은 문화예술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했다. 문화예술인들은 기자회견, 퍼포먼스, 공연 등으로 항의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항의행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분노가 작아서? 관심이 없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일상이 된 분노가 매너리즘이 되고, 그렇게 무기력해진 것일까?

나는 가수다. 내가 부른 노래 때문에 고소고발도 당해봤다. 몇이나 그런 경험을 가졌을까?

채증 당하는 건 기본이고 경찰이 오늘 집회에선 무슨 곡을 부르냐고 묻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 나는 노동가수다. 우리들에겐 블랙리스트가 그다지 새삼스러울 게 없다.

투쟁현장에서 노래하는 나는 노동가수기 때문이다.

 

국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감시하고 통제하는 건 있어선 안 될 폭력이다.

그러나 과연 이번이 처음일까? 권력의 시선은 오래전부터 노동가수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왜 우리사회는 진즉에 문제 삼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개인 신상까지 털려가며 감시받았지만 그 짓을 한 권력 관련자들 중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런 배경에서 블랙리스트는 탄생하고 유지돼왔을 것이다.

권력의 지배와 폭력은 늘 있었는데, 어디에는 침묵하고 어디에는 분노하는 시류가 난 탐탁지 않다.

부당하게 세상에서 배재되고 억울하게 짓눌리는 모든 차별과 억압에 분노해야 한다.

축적된 분노 없이 갑자기 일어나는 싸움은 없다. 모든 저항엔 늘 먼저 송곳처럼 뚫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비리들은 세상 밖으로 삐져나온다. 이번 블랙리스트가 처음인 것처럼 비난하는 일이 내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도 같은 결이다. 오래전부터 감시당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번 사건은 충분히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은 명백히 가려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창작물에 대한 감시와 검열을 넘어, 창작자들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박근혜 정권에 대해선 엄중한 처벌과 교훈을 남겨야 한다. 나 또한 반성한다. 넓게 모든 것에 분노했지만 더 뾰족하지 못했다. 하나하나의 사안에 좀 더 성실히 분노해야겠다. 무뎌진 날을 더 갈아야한다.

내 분노의 블랙리스트, 민중을 위한 블랙리스트를 간직하자. 진정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할 자들은 권력을 이용해 세상을 주무른 자들, 그 권력에 부역한 자들이다.

노동가수 지민주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