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역사 교사들, 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국정교과서 폐기"

국정 역사교과서에 반대하여 세종종합청사에 모인 전국의 역사교사들.

 

“광화문 한 쪽에서 태극기 흔들고 계신 그 분들은 왜 그리 역사 교과서에 집착하는 걸까요? 평상시에는 영어, 수학만 중요시하면서?”

“대전 역사교사모임 회장님이 페이스북에 쓰신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언론을 장악하면 현재를 장악할 수 있고, 교육을 장악하면 미래를 장악할 수 있고, 역사를 장악하면 과거를 장악할 수 있다. 그 분들이 이 사실을 아는 게지요. 역사교육을 통해서 과거와 미래를 다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특히 광우병 시위 때 촛불 소녀들의 참가 열기를 보면서 역사 교과서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판단한 거예요. 이걸 가만히 놓아두면 이젠 영원히 자기들에게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거지요. 조선 시대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에서 훈구파가 4번이나 이겼지 않습니까? 사림파가 반대로 4번이나 지고요. 그러나 마지막 승자는 누가 됐지요?”

“사림파요.”

“왜 사림파가 이겼지요??”

“서원과 향약요.”

“네, 서원과 향약 덕분이지요. 바로 교육입니다 교육! 그것을 저들도 알고 우리도 압니다.”

각각 광주와 대구에서 올라오신 두 역사 선생님의 토크쇼 일부분이다. 연신 폭소가 터졌다. 분위기는 뜨거웠지만 그들이 앉은 시멘트 바닥에서는 끊임없이 냉기가 슬금슬금 올라왔다.

한겨울 흐린 날씨, 약 200명에 가까운 역사 교사들이 세종시 정부 종합 청사 교육부 건물 앞에 모였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 참가한 역사 교사들은 ‘국정 역사 교과서 폐기와 연구학교 지정 철회’를 외쳤다. 집회는 장장 세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의 격려사에 이어 노래 공연, 1부 박래훈-차경호 선생님의 역사 토크쇼, 2부 이민동 선생님의 퀴즈쇼, 3부 지역모임에서 준비한 4행시 발표하기와 역사 교사 발언대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행사를 마친 후에는 교육부 건물 주위를 돌며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기자: 제가 알기로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이 만들어진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잖아요. 여태까지 역사 수업을 위한 교재 만들기와 수업 연구에 힘썼지, 정치적인 발언이나 집회를 한 적이 별로 없잖아요? 이렇게 모인 것이 처음 아닌가요?

대전회장 남동현: 예. 집회 신고를 했던 여 선생님 말씀이 처음으로 집회 신고를 하다 보니 긴장과 감격으로 손이 떨렸다고 하더라구요. 요즘 수도권 선생님들이 국정교과서 문제로 워낙 바쁜 것 같아서 이번엔 지방에서 자발적으로 서로 의기투합하여 준비를 했어요.

기자: 30년 세월 동안 연구에만 주력해 왔던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어떤 연유로 이런 엄동설한에 전국 각지에서 깃발을 들고 모인 걸까요?

대전회장 남동현: 역사 교사의 자존심 같은 거? 친일파나 특정 정권을 옹호하는 역사 교과서로는 가르칠 수 없다? 이런 거죠. 학생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고픈 소망 같은 거요.

기자: 이번 마당을 펼쳐 주신 분이 충남역사교사모임 회장님이시지요? 짧은 기간에 카톡방에서 여차저차해서 모이게 됐다지요?

충남회장 김종민: 이번 집회 주동자 없어요. 사발통문 형식이지요. 모두가 공동 주최자인 셈이에요. 제가 여기 가까이 있으니까 일을 조금 더 한 것뿐이구요. 날씨는 춥고 설도 다 되어 가고 해서, 오늘 몇 분이나 모일지 조마조마했어요. 집회 해 보자고 얘기 나눈 것이 불과 일 주일 정도밖에 안 되었어요. 준비 기간이 너무 짧다 보니, 열 분도 모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했어요. 이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어요. 전국 역사 교사가 내가 알기론 4천명 정도인가? 근데 오늘 거의 2백명 가까이 모였으니 4%~5% 정도 오신 거잖아요. 공문을 띄운 것도 아니고, 출장비 받아서 오는 것도 아닌데... 정말 놀라고 감동 먹었어요. 역시 역사 선생님들이다. 저들이 우리를 개, 돼지로 부를지 몰라도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준비하는데 하나도 힘 안 들었어요. 모두 서로 돕고 기꺼이 일을 분담하고...

기자: 말이 집회지, 여느 토크 콘서트보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잖아요? 둘러선 경찰분들이 ‘쟤들 지금 뭐하고 있나?’하고 의아했을 거예요. 계속 떠들고 웃고 노래하고... 여태껏 참가한 어떤 행사보다 흥겹고 재미있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세종 종합청사에 처음 왔는데요. 솔직히 실망했어요. 콜로세움과 아파트를 합쳐 놓은 것 같은 거대한 구조물이 황량한 벌판에 수선스럽게 서있는 것 같아요. 살벌하고 차가운 느낌이었어요. 사람 하나 없을 것 같은 건물을 올려다 보며 구호를 외치려니 처음엔 너무 현실감이 안 느껴져서 혼났는데요. 건물의 위용에 비해 한 줌밖에 안 되는 선생님들이 마치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처럼 천진난만하게 집회 분위기를 이끌어 가니 3시간이 금방 흘러가더라구요. 참가 선생님들의 연령층도 진짜 다양한 것 같아요. 첫 발령을 받은 1년차 선생님부터 머리 희끗한 60대 선생님들까지, 국정 교과서 반대에 대해서는 모두 한 마음인 것 같아요. 선생님은 몇 년 차세요?

한정수: 이제 갓 1년요.

기자: 저는 나이가 있다 보니, 처음에 국정으로 가르치다가 검인정으로 바뀌어서 두 가지로 다 가르쳐본 셈인데요. 한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검인정으로 가르치다가 국정 교과서 문제에 맞닥뜨린 거잖아요? 국정으로 바뀌면 어떤 문제점이 있을 것 같아요?

한정수: 우리나라 학생들은 교과서가 절대적인 사실인 줄 안다 말이에요. 사실 저 같은 경우 신규 교사이다 보니 특히 근현대사는 제 나름대로 시험문제를 내기 보다는 교과서 그대로 출제를 하는데, 교과서가 편파적으로 서술되어 있으면 그게 그대로 아이들에게 세뇌되잖아요.

기자: 국정교과서 시절이 편했던 측면도 있어요. 공립은 4, 5년마다 전근 가는데, 검인정 체제에서는 학교마다 출판사가 다르니 계속 부교재를 다시 편집해야 하고 귀찮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교사들이 왜 검인정을 주장할까요?

한정수: 사실 역사라는 게 사료 선택부터 사료가 쓰여진 입장이 있는 거구, 그걸 바라보고 판단하는 역사가의 입장이 있는 거잖아요. 그걸 어떤 정부나 정치 지배자가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서 강제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3부 교사 발언대에서는 빨간 넥타이를 매고 오신 전북 회장 이우종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여기 모이신 여러 선생님들과는 달리 저는 국정역사교과서를 찬성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해도 여러분들은 제게 욕을 하거나 저를 내쫓지 않으시잖아요? 서로 다른 견해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춰서 한 가지로 통일시키면 그건 독재잖아요?”

역사 토크쇼를 했던 두 분의 마지막 대화를 소개한다.

“그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역사 교사 불복종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학교도 연구학교를 신청하지 않도록 주변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 법령이 폐기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40년을 살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권력은 역사를 이길 수 없다'입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여러분?"

“예~”

사불범정(邪不犯正)이란 말이 있다. 거짓된 것은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교육부는 박근혜 정권의 장단에 맞춰 어떻게든 국정교과서를 현장에 퍼뜨리려 안간힘을 쓴다. 연구비 지원과 승진 점수 부여라는 미끼를 내건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을 통해 사실상의 국정교과서 배포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결국 희생양은 학생이다. 학교 현장에 학생을 볼모로 한 싸움을 부추기는 행동에 다름 아니다.

솔로몬의 현명한 재판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부모에 대해 솔로몬은 반씩 나누어 가지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자식을 살리려는 진짜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현재의 현명한 행동은 무엇일까? 역사 교사들이 아이들 대신 몸을 내밀고 “아이들을 해치려면 우리를 먼저 치시오”라고 집회는 말하는 것 같다. 단지 3시간의 집회로 그런 공치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년 봄부터 그들은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을 반납하며 거리에서 1인 시위와 길거리 역사 수업을 줄기차게 이어왔다.

우리나라 역사가 모진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도도한 산맥과 물줄기를 이어온 것처럼 이들 역사 교사들도 서로 어깨 걸고 예까지 달려온 것이다. 무수한 외침(外侵)과 지배를 겪으면서도 끝내 다시 살아 일어서는 이 겨레...... 어떻게 일개 권력이 역사를 이길 수 있으랴!

박래훈과 차경호 선생님의 역사 토크쇼.

 

집회를 마치고 교육부 청사를 돌며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를 외치는 역사교사들.

 

집회를 준비하고 전체 진행을 맡은 충남 역사교사모임 회장 김종민.

 

전국에서 모인 역사교사들이 교육부 건물 앞에서 '국정 교과서를 폐기하고 연구학교를 철회하라.'고 외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해 준 햇병아리 1년차 역사 교사 한정수 선생님.

 

역사 퀴즈쇼를 진행하는 전북 역사교사모임 회장 이우종 선생님.

 

'국정교과서 철회' 스티커를 붙이고 집회에 참가한 모습.

 

충북역사교사모임의 '국정교과서 폐기' 플래카드.

 

지난 봄 대구 동성로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1인 시위를 하는 역사 교사 장대수 선생님.

 

국정교과서 폐기와 연구학교 철회를 외치며 전국 역사교사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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