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학교 신청 안건 처리한 학운위 임시회, 첫 번째 투표 상황 누락

문명고 한 학생이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평화뉴스>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 효력이 정지된 경북 문명고가 연구학교 신청을 심의, 의결한 문제의 학교운영위원회 녹취록을 은폐하려는 정황이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22일 복수의 경북 문명고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달 초 학교측은 지난 달 14일 오후 5시 열린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6차 임시회의 녹음 파일을 속기해 녹취록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작업은 학교운영위원회 간사인 문명고 행정실 직원이 했다. 

이 학교 학운위 6차 임시회는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안건을 통과시킨 회의. 학교재단과 학교측이 “학운위가 결정한 사안”이라며 절차적인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핵심 근거다. 학교측은 경북교육청에 찬성 5표(반대 4표)로 가결됐다고 최종 심의결과만을 보고했다.

하지만 문제의 학운위 표결은 두 번째 결정이었다. 이미 첫 번째 투표에서 반대 7표(찬성 2표)가 나왔다. 이 투표를 인정했다면 연구학교 신청 안건은 부결이 되는 셈이다. 그러자 학교장은 회의 정회를 요청했다. 이어 학교운영위원장 등 학부모위원 5명을 교장실로 불러 20~30여분간 집단 면담을 했다. 그 뒤 다시 표결을 했다.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그런데 학교측이 작업을 한 녹취록에는 정회 이전에 진행된 첫 번째 투표 상황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반면 정회 뒤 진행된 두 번째 투표 관련 상황은 소상히 기록됐다. 지난 9일경 녹취록을 열람한 교원위원인 학운위원들은 이를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작업을 한 간사와 언성이 오가기도 했다.

한 학운위원은 “정회 전인 첫 번째 투표 관련 상황 녹취가 3~4줄로 정리돼 있었다. 피곤하고 힘든 데 정회를 한다는 식으로 쓰여 있었다”고 전하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떤 문제도 없이 연구학교 신청 안건을 처리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운위 교원위원들은 녹취록을 2~3차례 더 봤지만, 이 부분이 해소되지 않았다. 이들은 녹취록 최종본을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학운위원은 “녹취록에 대해 동의를 얻으려고 한 것 같다”며 “간사가 정회 이전 상황에 대한 녹음 파일 자체가 없다는 말도 하더라. 말이 안 된다. 어떻게 그 상황만 녹음이 안 될 수 있나. 그 회의 당시에 녹음이 다 됐다”고 밝혔다.

문명고 학부모들은 학교가 위치한 경북 경산시 경산오거리 등에서 연구학교 철회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최대현

학운위원이 전한 간사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정회 이전 상황에 대한 녹음 파일 자체를 삭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앞서 학운위는 6차 임시회 회의록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해 현재까지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문제의 학운위 회의는 학부모들이 연구학교 지정처분의 효력정지 신청과 취소소송을 지난 2일 제기할 때 핵심적으로 ‘위법성’을 주장한 부분이다. 대구지방법원은 지난 17일 학부모들의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위법성을 취소소송에서 충분히 다투어질 여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학부모 소송대리인인 한 변호사는 “학운위 녹취록을 제출해 달라고 재판부에게 요구했다. 이부분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효력정지 결정이 났다”며 “본안 소송 과정에서도 학운위 녹취록 제출을 계속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학교측의 녹음 파일을 녹취록으로 만든 작업을 진행한 것은 재판을 대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학교측이 위법성이 확인될 수 있는 ‘정회 이전’ 상황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은폐 의혹이 제기된다.

문명고 한국사 국정교과서 저지 대책위원회 한 관계자는 “학교가 위법했던 학운위 상황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학운위 회의록과 녹취록 원본을 하루빨리 공개해 잘못을 인정하고 연구학교 신청을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의 연구학교 지정 효력정지 결정으로, 문명고는 연구학교 지정 취소소송 판결이 날 때까지 연구학교 지위를 행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문명고는 교육부로부터 받은 국정 역사교과서를 배포하지 못했다. 국정<한국사> 과목을 가르치려고 채용한 기간제 교사는 현재 1학년을 대상으로 검정교과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태동 교장은 법원이 효력정지를 결정한 지난 17일 학교누리집의 열린학교-문명마당 란에 글을 올려 “학부모와 재야단체가, 촛불과 태극기에서 배운대로 시위를 하면 법에 따라서 교장이 이미 결정한 정책도 폐지될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에 근거하는 지 의문”이라며 불만을 표현했다. 현재 이 글은 삭제된 상태다. 경북교육청은 지난 21일 법원의 효력정지 결정에 대한 항고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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