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안형준 조합원

안형준 조합원 / 사진 변백선

22일 토요일 자동차와 조선소, 전자제품수리 등 제조업 노동자들과 빗자루를 든 청소노동자 3천 명이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이들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촛불의 힘으로 만든 조기대선의 후보들은 노동자 서민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장시간노동과 최저임금으로 고달픈 헬조선의 노동, 해고와 죽음이 반복되는 일터는 바뀌지 않았음을 고발했다. 이들 노동자들이 모인 광장에서 발표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편지글을 소개한다.

 

오늘 비정규직노동자 대행진에 함께하신 여러분! 정말 애쓰셨습니다.

저는 삼성전자에서 만드는 냉장고, 세탁기, TV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영등포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IMF금융사태 때 다니던 회사가 폐업되고 직업훈련을 받으면서, 나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먹고 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일입니다.

첫 출근 날 출장수리를 가서 동작되지 않는 냉장고를 직업훈련원에서 배운 기술로 고쳐냈을 때, 근심으로 가득한 고객님 얼굴이 미소로 기뻐하실 때, 더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던 게 생생합니다. 그런데 내가 일했던 보람보다 현실은 멀었습니다. 서비스센터의 일상은 삼성전자 원청의 일방적인 고객만족 실적 압박의 나날이었습니다. 가짜 친절로 고객을 속이고, 하청노동자에게는 매일 실적을 내세워 쥐어짰습니다. 신입시절, 고객과 눈 맞춤도 버거운 초년 시절에 끝도 없고 대책도 없는 친절경쟁에 자기감정을 억지로 감추고 진땀을 흘렸던 우리 AS수리기사들입니다.

그렇게 대기업 전자제품을 수리하며 엔지니어의 자부심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젊은 청춘들이, 여름 성수기가 지난 후에는 씁쓸함을 뒤로하며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해마다 그랬습니다.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었습니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일터에서 활기차야 할 아침시간인데 늘상 원청 지시 속에 녹음기 같은 팀장의 폭언을 더는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일터에 노동조합이 생긴지 4년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뭉치니 우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잘릴까봐서 숨죽였던 동료들이 생동감 있게 목소리를 내고 주장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업무 중간에 사무실 호출, 반성문 작성, 퇴근 후 야간까지 이어지는 벌칙회의, 일요일에 강제 등산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갖가지 패악들이 우리 일터에서 사라졌습니다. 얼마간의 기본급도 생기고, 소중한 서른세 살 젊은 동료의 생목숨으로 얻은 눈물의 업무차량을 타고 일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동료의 아픔을 먼 산 보듯 했던 내가 함께하니 힘이 생기고 우리의 힘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야 세상의 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서서 싸우셨던 홈플러스, 이마트 선배노동자들의 생활임금투쟁, 다산콜센터 상담노동자들의 알려지지 않았던 고통스러운 사연들, 아파트 경비노동자에 대한 모욕과 억울한 죽음, 비정규직 통신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수많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알바노동자들의 현실을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일터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누군가는 해야 될 일, 그 일을 하는 사람! 존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살아갈 수 있게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일하는 노동자, 씨 뿌리며 키우고! 물건을 만들고, 옮겨주고, 청소해주고, 불편함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고마운가요. 저는 꿈꿉니다.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존중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리고 오늘, 일하는 우리노동자, 청소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더 뭉치고 뭉쳐서 세상을 고치고 세상을 청소하는 대행진의 첫걸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세상을 새로 고쳐서 일하는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소노동자를 만나러 가는 금속노동자들 / 사진 변백선

 

시급만원을 요구하는 청소노동자와 간접고용 철폐를 상징하는 홍길동 조형물들 / 사진 변백선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