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 여론 조작 과정 검찰에 수사의뢰

박근혜 정부가 강행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실행한 교육부가 당시 ‘엉터리’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의견서를 검증 작업도 없이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문제의 의견서를 50여 박스가 제출될 것이라는 사실도 교육부 고위 관료가 미리 인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교육부의 의견 수렴 과정에서 제출된 찬성 의견서. 교육부는 이 의견서를 인정했다. © 최대현

 

11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의견수렴 과정에서 제기된 여론 개입 의혹에 대한 사전 조사를 벌인 결과,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구분(안) 행정예고’ 기간(2015년 10월 12일~11월 2일)에 제출된 찬반 의견서가 담긴 박스 103개 가운데 동일한 찬성 이유와 제출자의 인정사항을 인쇄한 일괄 출력물 형태의 의견서가 담긴 박스가 53개나 됐다.

이 박스는 현재 교육부 문서보관실에 보관 중이다. 53개 박스 중 26개 박스, 2만8000여 장을 조사했더니, 4개 형식의 의견서 양식에 일정한 유형의 찬성 이유가 반복됐다. 한 사람이 같은 주소로 118장을 제출하거나, 또 다른 사람도 103장을 제출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동일한 주소지인 것도 1613장이나 됐다.

특히 개인정보란에 상식을 벗어난 사항이 기재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완용 이름으로 ‘대한제국 경성북 조선총독부’ 주소, 경술국치일인 1910년 8월 29일을 전화번호로 만들어 제출하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 이름으로 청와대 주소,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일을 전화번호로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당시 교육부는 이런 찬성 의견서로 모두 인정해 찬성 의견이 15만 2805명이라고 밝혔다. 찬성 의견서의 유효 여부에 대한 검증 절차도 없었던 것이다.

문제의 박스에는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민운동본부’라는 곳의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 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확정한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이 당시 국회에서 확인한 바 있다. 전 장관은 2015년 11월 24일 337회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늦게 11월 2일 9시 30분경에 교육부 직원에게 연락이 와서 23시경에 50여 상자가 올바른 역사교과서 운동본부라는 곳에서 왔다”고 말했다.

당시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민운동본부가 문제의 박스를 보내올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진상조사위가 당시 의견서를 계수한 교육부의 직원들의 증언을 들었더니, 김 아무개 전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이 “밤에 찬성 의견서 박스가 도착할 것이므로 의견서를 계수할 직원들을 야간 대시시키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 직원은 200여 명이 자정 이전까지 계수 작업을 벌었다.

이렇게 볼 때, 교육부가 엉터리 의견서를 뭉텅이로 가져온 단체와 내통했다는 의구심이 나온다. 여론 조작에 교육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확인한, 진상조사위는 지난 10일 연 회의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의견수렴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해 여론을 조작한 의혹에 대해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요청한다고 의결했다.

진상조사위는 “여론조작의 개연성이 충분하며, 일부 혐의자는 교육부 소속 공무원의 신분을 갖지 않아 진상조사팀의 조사권한이 미치지 않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개인정보보호법과 형법 등을 위반한 혐의를 보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여론개입 수사과정에서 교육부의 조직적 공모나 협력 여부, 여론 조작 여부 등 사실 관계가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에 대한 신분상 조치 등도 요청할 계획이다. 고석규 진상조사위 위원장은 “여론 개입 과정에 청와대와 국정원, 교육부가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지시, 관여했다고 의심된다. 수사를 통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철저히 규명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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