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법률원 / 변호사 신 인 수

헌법 개정 논의가 한창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헌법 개정안을 제출하자 여야 정당들은 각자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쁩니다. 국무총리를 국회가 뽑아야 한다며 기싸움이 한창입니다. 하루하루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그리고 자영업자에게는 배부른 소리만 같습니다. 정말 헌법 개정은 우리와 상관없는 높으신 양반들의 ‘그들만의 리그’일까요?

“이탈리아 공화국은 노동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이다”, 1948년 군주제가 막을 내리고 공화제를 채택한 이탈리아 헌법 제1조입니다. 어때요, 멋지지 않나요? 단 한 줄만으로 이탈리아 국민들이 지향하는 국가의 모습이 어떤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그려지지 않나요? 비단 이탈리아 헌법만이 아닙니다. 20세기 근대 헌법은 대부분 ① 당신은 국민입니까, ② 당신은 시민입니까, 그리고 ③ 당신은 노동자입니까라는 세 가지 질문에 충실히 답합니다. 국민으로서 참정권을 가지고, 시민으로서 신체와 표현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리고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고,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합니다.

그러나 1987년 대한민국 헌법은 두 번째 질문에서 멈췄습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친 6월 항쟁을 거치며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국민이 되었습니다. 박종철 열사 등 수 많은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등 시민의 권리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에서 멈추었고, 아쉽게도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노동자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은 어떨까요? 일정한 진전이 있습니다. ‘근로자’가 ‘노동자’로 바뀌었고, 국가는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공무원에게도 원칙적으로 노동3권을 인정하면서 현역 군인 등 법률로 정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제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노동조건 결정 과정에서 ‘노사대등 결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노동자가 노동조건의 개선과 권익보호를 위해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써 파업권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지난 3월 6일 양대노총이 공동으로 발표한 ‘일하는 사람을 위한 노동헌법 8대 핵심과제’가 어느정도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 합니다.

아쉽고 보완할 점도 있습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단지 국가가 노력할 의무가 있다는 선언적 의미로 축소한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우리 사회는 2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고,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50%에 불과합니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비정규직이 많고, 가장 차별의 정도가 심한 나라입니다.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려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국가와 사용자의 의무로 규정되어야 합니다. 부당해고로부터 보호와 직접고용 원칙이 빠진 것도 아쉽기만 합니다.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고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정작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통보처분은 철회하지 않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제 공은 국회에게 던져졌습니다. 중요한 건 그 공을 받고, 쳐야 할 선수들은 높으신 분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간이자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우리의 리그, 국민과 시민을 넘어 당신은 노동자입니다라고 명확히 답변하는 헌법을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은 자본에 편승한 물신공화국이 아니라, 노동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당당히 선언하고 확인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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