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장으로 돌아온 '박창진 사무장'을 만나다.

총수일가 갑질 내부고발자에서 노조 지부장으로 돌아온 박창진 사무장, 그를 9월 초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땅콩회항 이후 근황에서 시작해 ‘갑질’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기업문화, 비행기 승무원들의 노동 현실, 일하는 사람의 권리와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갑질과 폭력에 맞서 싸우면서 얻은 자기성찰과 단단함이 느껴졌다. [편집자]

 

 

 

땅콩회항 사건 이후 4년이 지났습니다.
불타던 여론이 사그라들자 교묘한 2차 가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언론이 비춰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제가 겪은 고통은 처절했어요. 화장실을 가도 땡땡이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그 사건으로 회사 안팎에서 사회적 살해를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제일 어려웠나요.
갑들이 우리에게 심어주는 공포가 있지요. ‘내가 조폭들에게 끌려가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마저도 들었어요. 동료들도 차츰 루머를 믿기 시작했고 저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길을 가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제 뒤통수를 때리며 “대기업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데 너는 때려죽일 놈이다”라고 하더군요. 세상이 저를 그렇게 조롱하는 줄 알았어요. 비행기를 타는 것도 두려웠지요. 승객 300~400명과 마주쳐야 하니까요.

 

외로운 싸움을 염려하고 응원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막상 비행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보니 제 이름을 기억하고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용기를 얻고 자각을 거듭하면서, 나는 단지 부당한 일을 겪은 피해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어요. 내가 가지고 있던 공포가 실재하지 않는 것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회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해고아닐까요? 해고를 당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는 있을 것 같았어요. 그두려움에서 한 발짝 벗어나게 되면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어요.

 

격려해준 분들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 있나요.
기내 청소노동자들이 저를 많이 응원해 주셨어요. 제게 쪽지를 전해주기도 했지요. 승객들이 나가고 청소노동자들이 기내를 청소하면 승무원들이 그것을 점검합니다. 그분들에겐 물 한잔 마실 틈 없이 바쁜 시간이죠. 그때 제게 다가와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응원합니다. 저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적힌 쪽지를 주셨어요. 그분들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명절이면 항공사 노동자들도 바쁘지요.
대한항공에서 25년 동안 일하면서 설날에 두 번, 추석에 한 번 정도 집에 갔어요. 휴가를 신청해도 휴가가 나오지 않지요. 고객들은 광고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미소를 요구합니다. 표정이 무뚝뚝하면 “왜 안 웃어요”라는 질문을 받아요. 거기에 “제가 오늘 힘들어요”라고 답하면 경위를 조사받고 소명을 해야 하지요. 그래서 가면을 쓰고 일합니다. 가면을 쓰고 벗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잃어가는 것이 우리 노동의 현실인 것 같아요.

 

노동자와 승객이 함께 웃을 수는 없을까요.
외국 항공사에 친구들이 있어요. 그들과 이야기 해보면 “우리 회사는 감정을 파는 회사다. 노동자의 감정을 소모해 수요를 만들어낸다. 회사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직원을 배려하는 여러 제도가 있다”고 합니다. 일례로, 1년에 몇 번 정도 너무 괴롭거나 우울할 때 언제든 휴가를 갈 수 있다고 해요.

 

일하는 사람이 충분하다는 이야기군요.
한국 항공사들이 규모에 비해 노동자 수가 가장 적습니다. 특히 승무원 수가 그래요. 휴가나 병가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데, 배려와 제도적 밑받침이 하나도 안 되어 있어요. 휴가철이면 매일 받는 문자메시지가 “오늘 승무인력 감축입니다”에요. 일이 몰려오는데 고객들은 배경은 모르고 항상 같은 서비스를 요구하시죠. 그럴 때 정말 속이 타요.

 

회사와 소통하면서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신입직원일 때부터 신입직원일 때부터 선배들을 보며 ‘회사와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저연차 직원 이직율이 높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나눠 보면 거기서 자괴감과 벽을 느끼고 있어요. 여기에 적응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억제하고 타인까지 감독하게 됩니다. 자발적 복종을 학습하는 것이죠.

노조에 대한 태도도 그래요. ‘왜 노조에가입 안 해요?’라고 물어보면, “필요하다는 건 알아요. 쌍용차를 보면 국가도 경찰을 투입해 노조를 탄압하는데 누가 우릴 보호해줘요”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참 안타깝습니다. 대기업의 목소리만 듣는 정부 정책의 폐해가 노동자들의 삶에선 이렇게 드러나는 거에요.

 

 

 

 

내부고발과 노동조합 결성. 
얼핏 비슷하지만 사실 많이 다른 일이잖아요.
노조를 만들게 된 계기는요.
노조를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동료들 이라도 개선된 상황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소명의식 정도였을까. 그러다 ‘물컵갑질’이 불거지자 사내에 익명 채팅방이 생겼고, 그 채팅방 관리자들이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실제로 그들을 대상으로 부당전보와 신상털기가 있었지요. 처음엔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이 맞나 싶었죠. 땅콩회항 사건 때 겪었던 일들이 있잖아요. 혼자 나섰다가 나만 다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갑들의 부당함과 구태에 맞서는 것을 저 말고는 경험해 본 사람이 없었고, 저도 경험을 나누며 함께 용기를 학습하고 싶었어요.

 

해 보니 어떠신가요.
노동조합은 유치원 같아요. 유치원생들이 신발 끈 묶는 방법을 배우듯, 우리도 인권과 노동권을 배우고 있어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던 것들이죠. 심지어 그걸 이야기하면 나쁜 세력으로 몰아가잖아요. 노조 지부장에 당선되고 나서 소감문에 “동지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동지’라는 말 때문에 난리가 났어요(웃음).

 

(웃음) 그저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말인데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할때도 걱정이 있었겠네요.
저도 색깔론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땅콩회항 사건 초기 시민단체에서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날 이용하려는 거 아닌가? 목적이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거부했죠.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도움을 받고서 오해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용당하기는커녕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에게 도움을 받고 있지요. 대응방향을 같이 고민하고 집회를 함께하고 있잖아요.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가 생기고 나서 직원들의 반응이 있나요?
이제 두 달 정도 되어갑니다. 다들 스케줄 근무라 회의 잡기도 어렵지만 조금씩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회사도 눈치를 보고 직원들의 복지를 개선하고, 총수 일가도 직원들에게 욕을 하지 못해요. 현장에 노조 가입을 독려하러 가면 ‘당신들 덕에 바뀌고 있다’는 말도 들어요.

 

 

 

무엇을 가장 바꾸고 싶으세요?
지난 10년간 권리는 제약되었고 회사는 인원감축으로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휴가를 낼 수가 없어 연차가 100일 이상 밀려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병가를 내야 하는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해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다른 직장인들은 당연히 누리는 우리의 권리를 찾자, 스스로 포기하는 문화를 바꾸자는 마음이에요.

 

사건의 발단이었던 총수일가의 갑질을 막는 것도 중요하겠죠.
구태의연하고 잘못된 관행에 이의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문화는 정말 바뀌어야 합니다. 지분에 맞게 수익 가져가고 권한 행사하면 뭐가 문제겠어요. 왜 편법을 써서 면세품을 파는데 자기 딸 명의로 해서 통행세를 받고, 승무원 식사를 줄여서 그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고, 직원들에게 욕을 하냐는 것이죠. 정당한 권한은 행사하되 정당하지 않은 건 하지 말라는 겁니다.

 

건강한 견제세력으로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군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 갑에게 자발적 양심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봐요.

 

대한항공에 있는 동료들, 그리고 시민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요. 
저도 회사에서 인정받았던 사람이고 누구보다도 철저한 관리감독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알던 세상은 가짜였고, 진짜 세상은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대한항공 직원들과 갑질에 시달리는 시민 여러분께, ‘바깥은 변하고 있으며 용기 내서 나서는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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