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립오페라합창단 소프라노 이윤아 사무국장 인터뷰···“지부장 쓰러지면 제가 해야죠”

ⓒ 노동과세계 정종배

“단식투쟁은 열혈운동가, 정치인들, 변혁가들, 세상을 바꿔보자는 사람들이나 하는 건줄 알았는데, 우리가 단식투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노동과세계>가 22일 오후 서울역 서부역 쪽 국립극단에서 폭염에 막 집회를 마친 후 만난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이윤아 사무국장, 8일째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문대균 지부장을 곁에서 지켜보며 심경을 드러냈다.

예술가들 특히 성악가들은 대개 ‘미식가’로 통할 만큼 먹는 것을 즐긴다. 맛집을 자주 찾아다니고 야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 성악가들이 잘 먹는데 안 먹고 참는 게 대단해요. 결기를 보여주는 것 같고 신기하게 잘 참으니까 오히려 미안할 정도.”라고 그는 귀띔했다.

소프라노인 이 사무국장은 다년간 공연을 해 온 경력이 있어서 완벽한 암보 상태가 아니더라도 오페라 스코어(악보) 30~40편 정도는 머릿속에 들어있다고 한다. 1~2주간의 짧은 연습기간만 주어져도 바로 공연에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음대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과 차별화되는 오페라 전문합창단원이 지니는 효율성일 것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공연을 하는데 합창단원이 두세 명 모자라는데 출연하겠냐고 국립합창단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경력이 있는 오페라 전문 합창단원은 실연에 바로 투입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아쉬울 때 공연료 몇 푼 주고 대충 쓰고 버린다는 심산이죠.”

국립오페라합창단 지부는 2014년 유진룡 문체부장관 때 국회에서 재창단 목적으로 예산 2억을 따냈다. 하지만 문체부가 국립오페라단으로의 예산 편성을 막았다. 그 당시 문체부에서 국립오페라단에 2억 예산을 편성하고 단원들을 복직시켰으면 오늘 이 사태까지 안 왔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문체부는 국립오페라단 소속이었던 국립오페라합창단을 다시 국립오페라단에 복귀시킨다면 문체부 스스로가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고, 그걸 못 참았기 때문에 별도의 재단법인 단체인 국립합창단에 예산을 편성하고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을 국립합창단에 억지로 편입시켰다”고 그는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가 만들어 놓은 국회 예산 2억은 매년 엉뚱하게도 국립오페라합창단과 전혀 상관없는 별도 재단법인 단체인 국립합창단에게 들어간다. “일반 합창단은 오페라 공연 출연을 원하지 않아요. 질 좋은 오페라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품 한 편당 평균 90시간씩 두어 달은 꼬박 연습을 해야 하거든요. 오페라 한 편을 노래와 연기로 외워서 무대 위에서 구현해내야 하는 작업이 무척 힘들고 싫기 때문이죠.”

이제는 오디션까지 트집 잡는 상황이다. “심지어 국립합창단은 우리를 받을 수 없다며 단원들끼리 서명까지 돌리고, 오디션을 보고 들어오라고 해요. 우리는 예전에 국립오페라합창단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서 입단한 단원들입니다. 2014년에 국립오페라합창단 사태 해결을 위한 예산을 우리 스스로 마련했지만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별개 단체인 국립합창단으로 들어가라는 문체부의 강제 속에서도 우리는 국립합창단에서 매번 오디션을 봤습니다. 이건 마치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다시 복직될 때 임용고시 다시 치고 오라는 것과 같은 얘기 아닌가요.”라며 그는 반문했다.

이 사무국장은 2002년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창단했을 당시 입단한 원년 단원이다. 현재 국립오페라합창단 문대균 지부장에 대한 신뢰는 무척 깊다. “문대균 지부장이 제가 학교 수업을 나가거나 공연 기획 일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일할 수 있는 시간들을 배려해 줘서 지금까지 함께 싸울 수 있었어요. 지부장은 총대 메는 자리잖아요. 문 지부장이 전략적 판단을 잘 하기도 했고, 저보다 훨씬 똑똑해요. 고맙죠.”

2009년 설립된 지부가 43명으로 시작해서 2012년에는 14명이 남아 싸워오다 지금은 단 둘이 남았다. “2009년 이명박 때 김형준 청와대 행정관은 우리들을 ‘빨갱이’라고까지 했었죠. 우리는 평생 음악만 공부하고 무대에서 공연만 해온 사람들인데, 노조를 만들거나 그들 정권에 반대하면 무조건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편협하고 졸렬한 패거리들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힘들게 싸웠습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의 비전만 보고 달려온 이 소프라노는 어떻게 해결돼야 하는 질문에 “재창단이 궁극적 목적”이라고 단언했다. 전문 오페라합창단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국립오페라단의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이라는 공연이 있었는데 합창 실력이 엉망이었죠. 남성합창 23명이면 공연장 3층 끝까지 들려야 하는 소리가 1층에서 조차 제대로 안 들렸어요. 우리는 월평균 90시간을 연습했지만 지금 단원들은 15시간 정도 밖에 하지 않아요. 보수를 조금 받으니까 그렇게 힘들여 연습을 하지 않는 거겠죠.”

ⓒ 노동과세계 정종배

그는 예술가로서 대한민국 예술에 대한 정부 정책이 ‘엉망’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국가지원 사업이 필요해요. 지금 문체부에 공연 현장과 시스템에 대해 잘 아는 공무원이 몇 명이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인촌 때는 이명박 정권의 근간이 천민자본주의라서 그런 모양인지 문화사업도 경제적 효용성만 따지면서 독립영화 지원사업은 대폭 축소하고 대중문화인 K-팝만 육성했어요.”

특히 그는 “물론 K-팝도 중요한 문화 사업이지만 전통무용인 학춤이나 봉산탈춤 같은 무형문화재 공연이나 독립 영화 또는 클래식 공연들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사업성이 없기 때문에 외면하고 없애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전통에 가치를 두는 문화 육성 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를 더 문화선진국으로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인들의 역할과 각성에 대해서도 주문했다. “예술인들이 가만히 앉아서 시스템의 부재만 탓하는 것도 좋은 자세는 아니라고 봅니다. 적극적으로 문체부에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며 담장 너머에 있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의식 있는 예술인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문 지부장이 쓰러지면 그가 이어 단식을 할 모양새다. 처음엔 문 지부장을 말렸다고 했다. 고혈압이 있어서였다. “본인이 지부장이고 둘 밖에 안 남았으니까 자신이 하는 게 맞다고 했어요. 본인이 끝까지 하겠다고 하는데, 사실은 릴레이로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붉은 색 건물들로 표현된 국립극단은 폭염과 함께 문 지부장의 ‘투혼’과 이 사무국장의 ‘열정’으로 꿈틀대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술가들이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며 그는 살짝 자존심을 삼키며 말했다. “관객들은 담 너머에 있지 않다.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고 그는 토로했다. 예술가들에게도 희망과 길이 있다는 것이다.

온갖 집회에 나가 노래로 연대하는 그의 얘기가 가슴에 다가온다. “미술은 그려놓으면 끝이잖아요. 공연은 똑같은 곡을 연주해도 월요일과 금요일 공연이 다르고, 월요일은 잘 해도 금요일은 잘 하지 못하기도 해요. 문학작품은 수정과 퇴고가 가능하지만, 음악은 퇴고가 안 되죠. 청중이 그 자리에 있을 때 최고의 감동을 줘야 합니다.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죠.”

ⓒ 노동과세계 정종배

 

 

<인터뷰 전문>

- 단식 8일째 지부장을 옆에서 지켜보는 심경

= 지부장은 그동안 막 먹고 살아왔으니 이제는 ‘디톡스’가 되겠다고 한다. 효소나 소금이랑 먹으니 독소가 빠져서 그렇다. 성악가들은 대개 미식가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야식을 좋아한다. 특히 남자 성악가들이 잘 먹는다. 안 먹고 참는 게 대단하다. 결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밥 생각 음식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신기하게 잘 참으니까 오히려 미안할 정도다.

처음에 문대균 지부장이 단식한다기에 말렸다. 고혈압이 있다. 혈압이 좋은 내가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본인이 지부장이고 둘 밖에 안 남았으니까 자신이 하는 게 맞다고 했다. 본인이 끝까지 하겠다고 하는데, 사실은 릴레이로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혼자 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도 세끼를 챙겨먹기가 미안해서, 일주일 동안 3~4kg 빠졌다. 곡기 끊은 사람 놔두고 식당가기가 정말 미안하더라.

단식투쟁은 열혈운동가, 정치인들, 변혁가들, 세상을 바꿔보자는 사람들이나 하는 건줄 알았다. 우리가 단식투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단식투쟁까지 하게 된 이유

= 최선의 선택이었고, 어쩔 수 없었다. 2014년 국회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 재창단 목적으로 예산 2억을 따냈다. 그런데 문체부가 국립오페라단으로의 예산 편성을 막았다. 그때 2억 예산을 국립오페라단에 편성하고 우리를 국립오페라단에 복귀시켰으면 오늘 이 사태까지 안 왔을 것이다. 문체부는 국립오페라단에서 쫓아낸 것이 그들인데 다시 국립오페라단에 예산편성을 하고 우리를 복직시키면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별개 단체인 국립합창단에 예산 편성을 하고 우리를 국립합창단에 강제 편입시켰다가 2년 계약직으로 단물만 빼 먹고 또 버린 것이다.

국립합창단은 오페라 공연을 원하지 않는다. 두 달 이상 오페라 한 편에 90시간씩 연습에 매진 해야 한다. 오페라 한편을 노래와 연기로 외워서 무대 위에서 구현해야 하는 작업이 힘들고 싫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오페라 한 편당 공연 출연 수당도 5만원씩 밖에 못 받는다고 더 싫어할는지도 모르겠다. 국립합창단은 콘서트 합창만 하는 게 사실 편할 것이다.

처음부터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공연을 국립합창단이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국립오페라단에서 전속합창단으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이라는 오페라 전문 합창단을 만든 것이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창단된 이후 오페라 공연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남북통일교류 예술단 공식행사, 광복절 행사 등 국가의 크고 작은 행사에 불려 다니며 모든 국가 공식행사를 도맡아 해왔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당시 국립오페라단 단체장이었던 정은숙 예술감독을 쫓아냈다. 아마 정은숙 예술감독의 시아버지가 문익환 목사님이고 시아주버님이 문성근 배우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어서 우리 국립오페라합창단도 해체시켰다. 당시 엄청 싸웠다.

박근혜 정권 때 국회 의원회관을 매일 돌며 우리의 상황을 호소했고 결국 더불어 민주당 원내대표 의원실에서 애를 써줘서 류진룡 문체부장관 시절에 예산 2억을 마련해줬다. 유 장관은 소신공무원으로 불렸다. 세월호 때 사태를 통감하고 내각 전체 사임을 제안했다가 밉보여 해임됐다. 당시 유 장관이 야당이었던 민주당 원내대표와 협의해서 복직 약속과 2억을 해준 것이다.

그런데 유 장관이 해임되면서 문체부 실무자들이 원직복직을 안 시키고 합창단에 임시방편으로 넣어버렸다. 비정규직 2년이 지나니까 다시 쫓아냈다. 정작 주인인 우리는 배제된 채로 합창단에는 매년 2억씩 들어가고 있다. 결국 햇수로 따지면 8~10억은 해먹었을 것이다.

국립합창단의 단원들은 우리를 받을 수 없다고 자기들끼리 결의 서명까지 돌리고, 오디션을 보고 들어오라고 했다. 우리는 국립오페라단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 오디션을 보고 당당히 입단한 사람들이다. 2014년 예산 따냈을 때도 우리는 매년 오디션을 봤었다. 그런데 오디션을 다시 보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다시 복직될 때 임용고시 다시 치고 오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오디션을 계속 봤다.

국립합창단과 싸우는 일은 사실 노노갈등이다. 문체부와 싸울 때랑 차원이 다르다. 배신감이 더 크다. 그래도 같은 예술노동자들 아닌가. 좌절과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억도 뺏기고 쫓겨나기까지 했으니까. 이번에 농성장 치고 본격적으로 투쟁하니까 문체부가 조금 움직이더라. 2018년 11월 말 농성장을 치고 겨울 내내 여기서 보냈다. 문체부 서울 사무소 안으로 들어오니까 이제야 문체부에서 해결방안이랍시고 국립오페라단 사무직 1년 계약직을 제안서라고 내밀었다. 심지어 이 내용 역시 감사원의 검토후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가능한 내용이라고 한다.

공연 예술가에게 1년 쓰고 버릴 계약직을, 그것도 사무계약직을 던진 것에 대한 모멸감이 무엇보다 컸고, 5년 전에는 우리가 마련한 국회 예산까지 빼앗아가며 국립오페라단 복귀를 강력하게 막았던 문체부에서 이제는 너희들을 국립오페라단에 넣어 주겠다고 생색을 내고 있는 상황에 쓴 웃음이 날 뿐이다.

우리는 퇴물이 아니다. 아직도 무대에서, 현장에서 노래하고 있고, 경륜있는 오페라 전문합창단원으로 손색없다고 자부한다. 오페라 스코어(악보)가 우리 머릿속에는 아직도 30~40편이 들어있다. 음대를 갓 졸업한 초년생들은 바로 공연에 투입이 어렵다. 한 달 꼬박 연습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무대 경험이 많은 오페라합창단원이니까 짧은 연습 후에 바로 투입이 되더라도 무대에서 공연이 가능하다.

- 소프라노, 성악가는 어떻게 해서 되나

= 성악은 기악과 다르다. 피아노는 세 살 네 살 꼬마 때부터 시킨다. 바이올린, 피아노는 꾸준하게 연습시간이 길어야 한다. 성악은 변성기 이후에 공부하는 게 좋다. 미성이 있더라도 변성기 이후에 탁성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성량이 컸던 데다가 엄마가 노래를 무척 좋아하신다. 엄마는 78세이신데 지금도 아마추어 시니어합창단에서 노래하며 공연도 하신다.

노래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초등학교 때 합창단 활동을 했었고,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해 주셔서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지원으로 성악공부를 시작했다. 평범하게 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와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바로 국립오페라합창단에 시험을 쳐서 합격했다. 유학 갔다 와서도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기 힘든데, 오디션 합격했을 때 너무 기뻤다. 일에 적성도 맞고 노래하는 활동이 즐거웠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박봉이라 이직률이 높았다. 도중에 유학 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오페라단에서 비전을 봤다. 꾸준히 남아서 좋은 오페라합창단원이 되기 위해 노력을 했다. 피아노 전공자들은 하루에 5~6시간 연습하는 경우도 많다. 성악은 장시간 연습하면 성대 결절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연습할 수 없다. 30~40분 연습하고 1시간 쉬는 방식으로 하게 된다. 성악 선생님들은 매일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을 권한다. 일주일에 한번 씩 시간 내서 3~4시간 몰아서 연습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사실 365일 매일 연습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매일 연습하는 사람이 좋은 성악가다. 나도 매일 연습하려고 하는데, 투쟁하면서 하려니 여의치가 않더라. 연대공연도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생활 리듬 잡기가 쉽지 않더라. 그동안 이곳 극단 건물 옥상에서 꾸준히 연습을 해왔는데, 어제와 그저께는 옥상 문이 잠겨 있어서 여의치가 않아서 아쉬웠다.

- 왜 노래를 하게 됐나, 내게 노래란 무엇인가

= 무결점이어야만 진정한 예술일까. 예술에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모든 예술인이 그 완벽함의 정상을 평생 한 없이 오르고 또 오르고 있는 과정인 것이고 아무도 도달할 수 없는 그곳에 가려고 모두가 많은 수고와 고민과 노력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예술이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베스트도 중요하지만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온리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은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열 명이면 열 명이 같은 작곡가의 같은 음악을 연주하더라도 그 각각의 연주자가 이 세상 누구도 아닌 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색깔의 연주를 하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개념이 빛나는 것이라고 여긴다.

무지개 끝에 있는 것이 노래인 것 같다. 가지고 싶은 데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다가가면 도망가고 관심을 끊으면 다가온다. 가질 수 없는 사랑인 셈이다. 음악은 시간예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잘하기가 쉽지 않다. 아쉬움이 남는다. 몇 마디에서 왜 숨을 쉬었을까, 마지막 소절을 더 길게 끌어야 하는데, 셈여림이나 가사를 표현해야하는 부분에서 많은 고민들이 숨어 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 연주해도 100% 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예술은 더 어려워진다.

정상으로 가기 위해 올라가기는 하지만 평생 살아 있는 동안 꼭대기에 도달해서 깃발을 꽂기는 힘들다. 미술은 그려놓으면 끝이다. 똑같은 곡을 연주해도 월요일 공연과 금요일 공연이 다르고, 월요일은 잘 해도 금요일은 잘 하지 못하기도 한다. 문학작품은 수정과 퇴고가 가능하지만, 음악은 퇴고가 안 된다. 청중이 그 자리에 있을 때 최고의 감동을 줘야 한다. 개인적으로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다. 표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 국립오페라합창단 활동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

= 2006년에 천생연분이라는 창작오페라가 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연을 했는데, 당시 문화예술계에서 말이 많았다. 검증되지 않은 창작오페라를 독일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한복을 입고 공연하는 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었고 모험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지인 독일 사람들의 전석 매진에 호평이 잇따랐다. 43명 오페라합창단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때 뿌듯했다. 2004년 6.15 때 인천문학경기장에서 남북합동공연을 했을 때도 기억에 남는다.

합창단원들은 솔로로도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 우리는 찾아가는 음악회나 청소년 소극장 오페라 때 주역으로 노래했다. 울진 원자력발전소가 초청을 해서 공연을 했을 때도 뿌듯했다. 울진은 교통이 아주 안 좋은 곳이라 서울의 문화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당시 소장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하동, 익산 등 지역에 찾아가 공연을 했고, 무대가 없는 마룻바닥에서도 공연을 했다. 석촌호수, 과천, 시청 등 무료 야외음악회도 공연을 가졌다.

- 동료들은 다 떠나고 끝까지 남았는데, 이유는

= 43명에서 2012년에는 박근혜 정권 탄압이 더 심해져서 14명이 남았다. 사실 14명 남았을 때보다 40명 있을 때가 더 힘들었다. 의견이 너무 달랐기에 모으는데 힘이 들었다. 14명이 되니까 의견이 빨리 모아졌다. 지부장은 총대 메는 자리라서 지부장 의견에 많이 동조했다. 반대의견은 웬만하면 하지 않았다. 문 지부장이 전략적 판단을 잘 하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 고마움과 믿음이 있다.

한번은 외부연대공연에서 인터내셔널가를 불러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런데 소프라노 두 명이 못하겠다고 했다. 가사 중에 허공에 매달린 십자가라는 가사를 꼽으며 기독교를 부정하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자기들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절대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오페라 공연도 출연하면 안 된다. 푸치니의 나비부인에는 일본 잡신을 노래하는 여성 합창 장면이 있다. 마술피리라는 작품에도 이집트 신을 찬양하는 합창 씬이 있다. 그런 내용의 공연은 무대에서 노래하면서 인터내셔널가 노래는 안 된다는 것은 이중 잣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핑계로 노조를 그만 둔 동료들도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것이다.

- 주변에 동료나 선후배들을 볼 때 예술 활동은 어려운 일인가

= 일단 국악이나 클래식은 K팝과 다르다. 시장이 넓지 않다. 국가지원 사업이 필요한 이유다. 유인촌 때는 K-팝만 육성했다. 독립영화사업 같은 것은 없애고 축소했다. 물론 K-팝도 중요한 문화사업이다. 하지만 무형문화재 같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나 클래식, 연극 정극 등의 순수 예술은 국가의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 인문학이 모든 문화의 근간이 되듯이 순수예술 역시 모든 문화의 근간이 된다고 본다. 문체부에서 더 넓은 시야를 지니고 장기적으로 꾸준한 지원 사업을 하면 우리나라가 결국 문화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 노동조합이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나

= 오늘 같은 집회도 문대균 지부장과 나 둘만으로는 어림없다. 10년 투쟁하는 동안 기륭전자, 콜트콜텍, ktx, 대한항공 등 안 다녀 본 사업장이 없을 정도로 숱한 연대공연을 했다. 연대공연은 품앗이라고 본다. 오늘 엄청나게 더운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와 줬다. 노조 없었으면 이렇게 못 싸운다.

내게는 인생의 귀인들이 있다. 공공운수노조 분들이다. 김현 세종문화회관 지부 문화예술협의회 의장은 경험이 많아 제갈량의 지혜를 보여주는 것처럼 노련하다. 정부와 상대해서 우리를 대변해 잘 싸워주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많이 싸워서 내공이 단련됐다. 언제나 여유가 있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놓인다. 이외에도 박주동 남동지구협 의장, 김지영 조직국장, 오승희 조직국장, 박영흠 선전실장 등 엄청 고생도 많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제일 고마운 것은 공공운수 노조 남동지구협 식구들이다. 10여 년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싸워주셨다.

- 국립오페라합창단 문제는 어떻게 해결이 되어야 하나

= 재창단이 궁극적 목적이다. 전문 오페라합창단이 정말 필요하다.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이라는 공연이 있었다. 그런데 합창 실력이 엉망이었다. 남자 23명이 노래를 부르면, 공연장 3충 전체가 쩌렁쩌렁 해야 하는데 소리가 안 들렸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못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공연 한 편당 90시간을 연습했다. 지금 단원들은 15시간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 보수를 조금 받으니까 그렇게 힘들여 연습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문체부에서는 현재 국립오페라단 1년 사무직 계약직을 하라고 한다. 무대에서 공연하는 일도 아닌데다가 대충 1년 쓰고 버리겠다는 의도다. 뭐하자는 짓인지, 모멸감이 든다. 그마저도 농성장을 문체부 안에 차리고 싸우니까 던진 안이다. 하는 일도 업무 소품정리나 하는 허드렛일이다. 월급주고 쓸 것이면 제대로 써야지, 1년 쓰고 버리겠다는 것도 예산 낭비라고 본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쓸 일을 생각해 보는 것이 기본 아닌가? 그냥 시끄러우니까 1년 계약직 먹고 떨어지라는 것이다.

- 민주노총에 바라는 것은

조합원이 100만 명인데, 민주노총 지회 뉴스에 ‘좋아요’가 없다. 100만 명이나 되면 조합관련 인터넷 뉴스에 가서 좋아요 하나 눌러줘도 여론이 될 텐데 너무 아깝다. 백만의 힘을 웅크리고만 있지 활용을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 투쟁조끼 하나라도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 너무 디자인이 후졌다. 시민들은 민주노총을 거대한 사익집단으로 본다. 조중동 양아치들의 언론플레이도 있지만 실제로도 아쉬움이 많다. 집행부가 정부와 많이 싸우고 했지만 일반시민들과의 소통이 필요할 때다. 올드패션이다. 오늘 우리 집회는 예술단이 하니까 노래도 있고 사물놀이도 있고, 지나가면서 볼만 했을 것이다.

다른 곳에 연대가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지나가는 시민들 유모차 아이들에게 풍선을 준다든지, 물티슈, 다트던지기 등 이벤트를 많이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민들이 집회를 친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노동자라고 하면 시민들의 저항감이 세다. 심지어 노동자라는 단어에 저항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라고 말한다. 우리가 깨고 나가야 하고 스킨십이 필요하다. 빨간 머리띠를 누가 좋아하겠나. 유모차 엄마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 아이들이 자라나면 노동자가 될 것 아니겠나. 육아 지원 사업 하면서 어릴 때부터 아이와 엄마들에게 스며드는 사업들을 벌여야 한다. 백만 sns 활용할 것들도 많을 것이다.

- 예술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라는 말을 인용하겠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무대에 나와서 연주만 하고 들어가는 ‘신비주의’ 시대는 지났다. 연주와 기획, 관객 세가지 시선이라는 객관적인 눈이 필요하다. 연주자가 해설을 들려주는 음악회가 있었는데, 좋은 기획이었다. 어떤 청중이 연주회 리뷰를 썼는데, 너무 좋아서 다른 클래식 음악도 찾아보게 됐다고 했다. 외연확장이 되는 것이다.

전문공연장을 찾는 깊이 있는 매니아 층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연과 클래식에 익숙지 않은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연 모두 필요하다. 노력하면서 더 고민해야 된다. 청중들은 담 너머에 있지 않다.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음악저널 이홍경 대표는 ‘예술가들도 무대에서 연주 공연만 할 게 아니라 기획과 자기 콘텐츠를 갖고 가야 한다’고 했다. 동의한다. 가만히 앉아서 시스템 개선만 바라는 것은 나태한 일이다. 같이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투쟁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공연이 다양화 되어야 하며 관객층을 넓혀가야 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이명박 정권 유인촌이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예술계에 엄청난 퇴보와 망조를 가져왔지만 지금 우리 예술가들에게도 희망과 길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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