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직업교육위원장 반론···교육부 관료 “현장실습(도제학교)을 잘 운영할 수 있다”

<교육희망>에 ‘같은 제도 다른 이름, 여전한 착취(http://news.eduhope.net/sub_read.html?uid=21538&section=sc40&section2=)’라는 글을 썼다. 이 기사를 본 교육부 담당 부서(중등직업교육정책과) 과장은 독일에서는 잘 되는 도제교육이 한국에서 잘 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학습근로자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학생들을 이중 보호할 수 있고 안전한 노동환경, 노동자의 권익 보장으로 현장실습(도제학교)을 잘 운영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정부 정책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며 교육부 담당 과장이 제시한 견해에 대한 반박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중세 도제교육은 만인의 교육이 아니다.

중세의 도제 교육은 기술자들이 갖추어야 할 전문성뿐만 아니라 성숙한 인격, 인생의 지혜와 통찰을 갖춘 진정한 장인을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초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타난 ‘길드’는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다. 소수의 기술을 소유한 장인들이 특정한 몇 명에게 제한적으로 기술을 전수하였고 이들은 기술적 우위를 점하여 부를 독점할 수 있었다.

도제교육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마이스터고 역시 직업계고 가운데 더 나은 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명문 특성화고, 특별재정 등 다양한 지원을 받는 특권학교가 된 지 오래다. 2012년 마이스터고 졸업자의 중소기업 취업비율은 42.3%이다. 이는 대기업 취업률 46.6%에도 못 미치는 수치로 마이스터고 졸업생의 공공기관 취업률도 11.1%에 달한다. 교육부 예산을 지원받아 작성된 정책연구 보고서는 이를 두고 “마이스터고가 중소기업 기능 인력 양성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다. 마이스터고의 직업교육 체제를 전반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일학습병햏법률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 참가자들 ©최대현

독일의 도제교육이 아닌 노동환경 도입 절실

실효성 없는 도제학교와 마이스터고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는 새로운 정책인 양 끊임없이 세금을 투여하고 있다. 우리의 기술과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 선진국 사례를 소개하고 후발 산업국 위치에서 이를 모방하던 시기는 지난 것이다. 독일과 우리 사회의 다른 노동환경조건을 면밀히 분석한 뒤 제도의 실효성을 따져봐야 한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이른 시기에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을 분리하고 우리의 중등학교 시점에서 직업훈련을 하는 나라다. 장기간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 신장 수준 역시 매우 높다. 연평균 노동시간, 낮은 산업재해율, 낮은 노동분배율, 노동자 처우 등의 수치가 이를 보여준다.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다수 존재하고 직업에 대한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은 독일 사회에서는 장인과 견습생이라는 기술 전수 방식이 적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정부가 발표한 2018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사망자 총 2142명(사고 사망자 917명, 질병사망자 1171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과 독일의 임금노동자 실제 노동시간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1983년 한국은 2714시간, 서독은 1621시간이었다. 1990년에는 한국 2514시간, 독일 1583시간이며 2000년 한국 2474시간, 독일 1381시간이다. 한국과 독일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 시간의 양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시간의 격차가 줄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연 1000시간의 차이는 1년 중 4개월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이는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인 문제가 아닌 두 나라 노동환경의 구조적 격차를 나타낸다.

생산력 증가를 위한 정책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하지만 정부는 그저 직업훈련 제도의 차이에서 오는 작업 생산성 문제로 이를 바라보고 있다. 도제학교에서 단편적으로 노동자의 직무수행능력을 키운다고 해서 전체 노동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 경제는 대기업-하청기업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래서 1) 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직무 수행기술이 대부분 낮은 단계다. 2) 장시간 노동으로 장인의 역할을 할 노동자가 훈련지도과정에 투입될 여력이 없다. 3) 장기간 기술 전수 방식은 직업의 안정성 측면과 기업 문화가 매우 중요한데 우리 기업의 고용 기간은 처참한 수준이다. 또,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입지단계의 청년 노동자 퇴사율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학습병행제 법으로 ‘학습노동자’ 양산

노동 환경과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면 현장실습(도제학교)이 잘 운영될 수 있는가?

교육부는 학생과 노동자 신분의 모호함을 일학습병행제법으로 소거했다고 주장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행위가 수업이라고 한다면 도제학교는 온 마을이 학교라는 철학을 실현한 것인가. 이 법안은 생산물을 만드는 기업공간을 수업공간이라고 규정짓는 것 이외의 특별한 내용은 없는데도 말이다. 혁신적 방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참담하다.

▲ 도제학교 법제화 중단을 촉구하는 교육,노동, 인권단체들의 목소리 ©강성란 기자

현장실습생이 ‘학생’이 아닌 ‘근로자’의 지위를 부여받는 과정에서 교육부는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2018 교육부는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공언하였지만 지금까지 현장실습생에게는 노동 관련 법률이 적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조차 교육부의 역할은 찾기 어렵다. 그런 교육부 관료들에게서 나온 일학습병행제 법률안에는 현장실습 2년 뒤에는 내외부 평가를 통해 입사를 확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법안을 비정규직을 넘어 신비정규직 양산하는 법안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교육부에 묻고 싶다. 노동관련법보다 더 나은 노동조건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가?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 다양한 노동관련 법률을 짜깁기 식으로 차용한 일학습병행제는 더 나은 법률도 아니며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고 이민호 학생 사건, LG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건 등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숙고하지 않고 급한 불끄기 식으로 대책 방안을 발표하는 정부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현장실습 근로계약서 작성 흑역사

노동자가 고용될 때 사용자와 가장 먼저 작성하는 것이 근로계약서다. 초기 현장실습이 시작되었던 시기 학생들은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학습자’라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현장실습생들은 일반 노동자와 다름없이 직무 수행에 투입됐고 희생됐다. 현장실습생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나 산업재해 사망으로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판결도 나왔다. 하지만 근로조건 등을 명문화하지 않았기에 임금 체불 등 부당한 대우를 입증하며 지난한 법정 싸움을 벌여야했다.

현실은 현장실습생이 ‘노동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나 현장실습생들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따라 학습자 신분으로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강제 조항이 없어 처벌할 수 없는 문제가 반복됐고 2006년에서야 근로계약서 작성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2012년 근로계약서 작성이 의무화됐으나 2017년 고 이민호 학생 사건에서 드러나듯 협약서 내용과 다른 근로조건의 근로 계약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최초 현장실습생 지위를 근로자로 확정한 대법원 판결은 1987년에 있었다. 현장실습이 훈련과정인가 직무수행과정인가라는 논쟁을 접어두더라도 학교현장에서 이 내용을 의무화도 아닌 ‘권장 사항’으로 받아들인 시점은 그 후로 30년도 더 지난 후이다. 그마저도 허점이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이어지자 교육부는 올해 일학습병행제법 제정을 들고 나온 것이다. 현장실습 문제에 눈감고 30여 년을 보낸 교육부 관료들이 뒤늦게 전교조나 노동인권단체들의 주장을 자신들이 고민한 내용인 양 말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라도 환영 입장을 밝혀야하나?

일학습병행제는 현장실습생을 ‘학습노동자’라고 규정짓고 근로기준법에 준용한 노동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만으로 현장실습이 잘 운영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우리 사회는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법이 서 있는 지반이 허약하면 법의 실효성은 없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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