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탐정 현장을 가다 2 – 허민기 役 배우 봉태규 인터뷰]

 

[닥터탐정 현장을 가다 1 – 드라마 <닥터탐정> 리뷰 "조금만 더 호들갑을 떨어도 좋겠다"

 

SBS 드라마 <닥터탐정>은 ‘사회고발 메디컬 수사극’을 표방한다.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재해사건을 조사하는 직업환경의들의 이야기다. 드라마에선 구의역 김군 사건과 문송면 수은중독 사건, 메탄올 실명 사건 등을 재조명했다. 

“아픈 건 당신 때문이 아니라, 일 때문”이라고 말하는 ‘닥터 탐정’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산업재해 사건을 재조명하며 노동안전과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동과 세계는 <닥터탐정>에 직업환경전문의 허민기 역으로 출연 중인 배우 봉태규 씨를 만났다. 봉태규 씨는 ‘연기하는 노동자’로서 “<닥터탐정>에 출연하며 노동자들이 더 정당한 대우를 받고 정당한 권리를 누리는 노동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허민기를 연기하며 “이렇게 분노하는 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와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Q.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배우로서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A.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부담스러워하거나 걱정했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을 하면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 사실 그런 걱정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다. 모든 이야기는 사회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금기시 되는 말이다. ‘노동자’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하는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사회가 노동과 노동자라는 말을 훼손해 잘못 사용하고 있다. ‘노동’의 이야기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내가 한다는 기대가 걱정보다 컸다. 특히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상업적인 드라마로 전했을 때 큰 의미가 있겠다고 기대했다.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모두 실제 일어난 일들이다

 

Q. 

드라마에 출연한 전과 후,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나?

 

A. 

굉장히 오래 노동을 하지 않는 시기가 있었다. 배우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법리로만 보면 노동자가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일하는 사람들, 노동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있었다. 드라마를 찍으면서 새로운 인식 보다는 더욱 확고해진 생각이 있다. 노동자들이 더욱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당연하고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노동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런 노동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이 당연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 더 확고해졌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드라마로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작품에 들어갈 때 사명감 같은 감정을 버리려는 노력부터 했다. 사명감을 갖고 하면 오히려 드라마를 그르칠 것 같았다. 사람들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다만 드라마가 기대와 바람만큼의 반향은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다.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Q. 

에필로그에 들어가는 다큐멘터리가 드라마의 사실성을 더 강화해주고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례들이 모두 ‘실제상황’임을 강조해주는데 드라마 자체나 연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A.  

독특한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요소는 극을 표현하는 데 양날의 검인 것 같다. 메시지를 더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어쨌든 드라마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요구엔 다큐멘터리와 다른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어떤 면에선 본편인 극을 불안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전달하는데는 분명히 효과적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청소노동자의 얘기를 다룬 1회가 방송되고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업이 피해자의 부모님들에게 시신을 못보게 하고 회사 마음대로 시신을 처리하는 일 같은 거. 하지만 이게 사실은 어떤 기업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메탄올 실명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저렇게 눈이 멀도록 아무 것도 모르고 청년들이 어런 알바를 하느냐’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일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드라마의 다큐멘터리 부분은 시청자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실제’라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감독님이 드라마를 찍기 전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닥터탐정>을 연출한 박준우 PD는 SBS 시사교양국 소속으로 <그것이 알고싶다>와 <SBS 스페셜> 등을 연출했다) 그래서 작업방식이나 문법도 기존의 드라마와 다른 부분이 있다. <닥터탐정>을 장르물이라고 하지만 실은 이 드라마는 매우 감정적인 드라마다. 사실을 보여줌으로 감정을 이끌어내는 다큐멘터를 만드는 데 익숙한 감독님의 장점이 발휘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체면같은 건 쓸데없다

 

Q. 

직업환경의학이나 산업재해, 노동안전 같은 소재들은 익숙한 소재가 아니다. 용어를 비롯해서 연기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A. 

막연한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굴뚝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을 읽고 책을 쓴 선생님들을 만나보면서 명확해졌다. 의사들에겐 ‘체면’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직업환경의 선생님들을 만나보니 그 체면이 없더라. 그게 진짜 중요했다. 

우리 사회는 일종의 ‘계급사회’라고 생각한다.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로 계급을 나눈다, ‘사회적 지위’라는 말을 쓴다. 너무 황당한 말이다. 그래서 우리사회가 ‘의사’라는 직업에게 부여한, 의사의 체면이라는 게 생긴다. 

그런데 이 분들은 체면을 버린 게 느껴졌다. ‘의사니까 이래야 한다’는 의사의 체면을 ‘쓸데 없는 얘기’라고 여기더라. 드라마에서 그걸 최대한 표현하고 싶었다. 그게 허민기를 연기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이다. 환자들을 대하거나 사건 현장을 대할 때 그런 체면이 없는 태도를 연기하는 것. 촬연 전에 그 분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그 지점에서 막혔을 것 같다. ‘의사라면 이래야 한다’하는 생각에. 나도 이 사회에서 그런 사회적 지위와 체면들을 보면서 사회화 된 사람인데 그 분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그런 선입견을 버린 캐릭터를 연기하지 못했을 거다.

민기는 그런 ‘체면’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의사인데’, ‘내가 어떤 사람인데’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직업환경의에게 그런 태도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태도가 없으면 대기업의 대단한 사람들을 만났을 떼 ‘네가 뭔데?’하는 태도를 보일 수 없겠지. 민기는 자기의 체면이 없기 때문에 모두를 똑같이 대한다. 재해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니까 불쌍히 여기지도, 부자니까 대단히 여기지도 않는다. 그런 태도를 연기하는 것에 처음엔 어려움이 있었다. 용어나 그런 건 뭐, 어려울 것 없었다. 어차피 우리가 늘 쓰는 말들이다.

 

 이렇게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드라마에서 다루는 사례들은 모두 실제사건들이다. 드라마를 계기로 이 사건들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들이 있었나?

 

A.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을 읽었다. 그 전에도 드라마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워낙에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사건들인만큼,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얘기들도 있었고, 촬영을 하면서 한 번 더 찾아보고 알아본 것들도 있다. 그런데 알아보고 읽을수록,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거지같았다.

일을 하다가 죽는 건 전혀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진짜 큰 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걸 마치 일반적인 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다가 어떤 특정한 환경이 조성됐을 때에만 언론도 사회도 관심을 기울인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일하는 사람이다. 그럼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하고 목숨을 잃는 일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도 비슷해야 할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Q. 

메탄올 실명사건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극중 허민기가 피해자에게 감정을 지나치게 이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A. 

민기는 감정적인 캐릭터다. 당연히 기본적인 정의감과 사명감이 있으니 UDC (<닥터탐정>의 주요배경으로 산업재해를 조사하는 가상의 공공기관이다.)에서 일하는 것이지만, 정의감과 사명감보다 어떤  ‘X같음’의 감정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다.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더라도, 어떤 지점에서 ‘X같음’을 느꼈을 때 움직이는 민기에게 혜미(극중 메탄올 실명 피해자)의 사고는 그런 감정이 발동되는 계기였을 거다.

그리고 아마 혜미가 시력을 잃기 전에 진찰했으면서 ‘의사로서 놓쳤다’는 감정이 들었을 거다. ‘그 때 조금만 더 꼼꼼히 봤더라면’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그렇다. 김용균 사건도 그렇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노동안전 사고들이 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조금만 더 꼼꼼하게 살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거의 모든 일이 인재(人災)인 셈이다. 민기의 감정이 과해 보였다면 아마 그런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거다.

감독님이 용산참사를 취재할 때의 얘기를 나눈 적 있다. 감독님은 ‘드라마에는 감정의 기승전결이 있는데 현장의 당사자들, 유가족들의 감정엔 결이 없다’고 했다. 그게 리얼이라고 생각했다. 혜미의 사건이 민기에겐 기승전결이 필요 없는 사건이었던 거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만큼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만큼 분노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고,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그래도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