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탐정 현장을 가다 3 – 공일순 役 배우 박지영 인터뷰]

 


 

<닥터탐정>을 그저 판타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세계에 발을 붙인 드라마로 만드는 것은 UDC 소장 공일순 (박지영 분)이다. 공일순은 UDC를 창설했을 뿐 아니라 UDC가 이름뿐이 아닌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기관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분발한다. 공일순 소장은 돈과 이윤 앞에서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따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 사회에 “당신이 아픈 것은 당신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공공기관’을 만들어낸 행동주의자다. 동시에 거대 자본과 권력 앞에서 정의나 사명은 때때로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아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닥터탐정>이 사회고발을 표방하는 많은 드라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의롭기만 한 영웅들이 나쁘기만 한 악당을 물리치는’ 단조로운 서사에서 탈피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UDC의 가장 앞에 서 있는 공일순이 가장 현실적이며 또 가장 많이 흔들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일순 소장을 연기하는 배우 박지영은 “공일순이라는 인물을 통해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더 많이 현실을 고민하고 더 큰 바람을 위해 후배와 동료들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어른의 모습. “이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거창한 말과 행동보다는 지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서로가 지치지 않도록 격려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박지영 배우와의 ‘꼰대같지 않고 어른스러운’ 인터뷰.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Q. 

<닥터탐정>을 촬영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뭐였나?

 

A. 

아무래도 자식을 키우다보니 청년 노동자들이 위험한 상황에 몰린 에피소드들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 사망사고나 메탄올 실명사고 같은 것. 각각 스물네살, 스물한살이 된 딸을 키우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 이야기들이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청년들이 노동안전의 중요성을 전혀 교육받지 못하고 무엇 때문에 위험한지, 위험에 노출됐을 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무방비로 내몰리는 현실을 보는 게 가장 속상했다. 

교육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고 알바를 하는 곳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교육이 있어야 예방도 있는 것일텐데, 정작 현장에서 위험에 내몰린 아이들은 뭐가 문제인지도 배우지 못했으니 예방도 대처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이 드라마를 통해 그런 문제의식이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것 같아 새롭기도 하고 또 속상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우리가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보여주는 드라마

 

Q. 

기존의 사회성 짙은 드라마들은 대부분 남성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됐다. 반면 <닥터탐정>은 타이틀롤도 여성이고 공일순 소장처럼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캐릭터도 여성이다.

 

A. 

사실 새로운 접근이랄 것도 없다. 남자냐 여자냐가 뭐가 중요한가. 그 역할들은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당연한 일과 남성들이 도맡아 왔기 떄문에 단지 역할을 여성이 맡은 것만으로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공일순 역할을 남자로 바꿔도 극에는 문제가 없다. 어차피 팩트와 사건을 중심에 놓고 드라마가 전개되기 때문에 캐릭터의 성별은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단지 여성이 그런 역할을 맡는 것만으로 새로운 시도로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나 또 드라마가 앞으로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할지 보여주는 일이다. 

극 중의 성별 역할뿐 아니라 드라마의 형식과 이야기에서 모두 감독님이 그런 새로운 의도를 염두에 두고 연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Q.

드라마에 삽입되는 다큐멘터리 부분이 극 자체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A. 

실제 직업환경의가 극본을 쓰고 또 새로운 방식의 연출을 시도하면서 드라마에 극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메우는 것 또한 다큐멘터리의 ‘사실성’이다. 극적요소가 부족함에도 시청자들이 “이게 진짜 있었던 이야기”라 여기며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가 다큐멘터리 부분인 거다. 

물론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지 않고도, 그저 잘 만들어진 극만으로 완벽하게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면 배우인 나로서도 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불편하고 생소한 이야기에 눈길을 잘 주지 않고 또 쉽게 잊는다.  극적 요소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만큼 온전한 제작환경이 주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선 극 바깥의 이야기들을 실제로 보여줌으로 메시지를 명확히 하고 시청자의 공감을 더 얻어내는 방식이 필요하다. 

1회에 나왔던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고 촬영을 하려는데 어느 곳에서도 지하철 역사를 빌려주지 않아서 서울부터 부산까지 전국을 누비며 장소를 구하기 위해 온 스탭이 고생했다. 이게 전부 대기업을 다루는 이야기라 공장 하나, 빵집 하나를 구하지 못한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다소의 부족함이나 허술함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드라마가 다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필요한 드라마라는 생각으로 만들고 있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런 드라마가 또 나오기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든 이 드라마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공감을 받고 이슈를 만들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이 작품이 작은 밀알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같은 거다. 

생각해보면 위안부 문제도 처음에는 다들 잘 몰랐던 문제였다. 피해자들이 조금씩 작은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들이 쌓이면서 이제는 그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나. 우리 드라마가 말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들, 그것들이 조금씩 쌓이고 쌓이기를 바란다. <닥터탐정> 드라마를 만드는 우리들은 어쩌면 다른 드라마와는 출발점부터 달랐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조금 부족해도 그런 의미있고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Q. 

극 중 공일순은 이상적인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가장 현실의 고민을 직면하게 된다. UDC라는 조직을 지켜내야하는 역할과 동시에 UDC의 후배, 동료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격려하고 지원해야 하는 역할도 공 소장의 몫이다. 

 

A. 

나는 어느덧 연기경력이 30년쯤 됐다. 촬영 현장의 모든 스탭과 배우들을 통틀어 거의 가장 연장자가 됐다. 그런 지점에서 촬영장에서의 배우 박지영과 UDC의 공일순 소장의 역할이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촬영장에서의 박지영으로도 UDC의 공일순으로서도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문제들은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어른들이 어른답지 못해서 아이들이 상처받고, 기업이 기업답지 못해서 돈 많은 부자가 부자답지 못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이란 자기의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현실의 문제를 먼저 고민하고 동시에 후배들에게는 지루한 꼰대가 아니라 좋은 선배, 좋은 동료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은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극에서도 또 극 바깥에서도 그런 모습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우리가 할 일은 지치지 않는 것

Q. 

직업환경의학, 산업재해 같은 소재들은 그간 대중문화에서 잘 다루지 않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들을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A. 

촬영 전에 <굴뚝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을 읽었다. 배우란 직업이 좋은 것은, 드라마를 하는 게 좋은 것은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보고 배우는 것이다. 아까 얘기했듯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하고 있다.

당사자, 피해자, 희생자 같은 분들을 생각해봤을 때, 난 그분들에게 어떤 말을 한다거나 어떤 감정이라고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어렵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그 감정을 대신해 말할 수 없다. 다들 힘을 내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그 말도 하기 어렵다. 도대체 그 분들이 어떻게 힘을 내야하고 또 얼마나 더 힘을 내야 한다는 걸까 싶다. 

마찬가지로 나도 어떤 순간에는 분노하고 슬퍼하겠지만 당장 내 생활로 돌아가면 그런 감정들을 계속 유지하면서 지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책 (취재진이 선물로 가져간 김용균 투쟁 백서 ‘김용균이라는 빛’)이 나오면 책을 구입하고 많이 팔리길 응원하는 것 정도다. 그리고 지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뿐이다. 나는 당사자들 앞에서 엄청난 것을 하겠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말없이 손을 잡는 것, 지치지 않게 ‘조금만 더’라고 마음을 먹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으로 많은 것이 변할 수도 있다. 요즘 위안부 피해자 어르신들의 이야기들을 종종 본다. 그 분들은 ‘투쟁을 하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온 것으로 투쟁을 만들었다. 그 분들은 지치지 않았고, 또 서로가 지치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것들에 우리도 지치지 않고 ‘조금만 더’라고 말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파이팅, 힘내세요. 같은 말보다, 그런 ‘조금만 더’가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과세계 백승호 (세종충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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