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일제 강제동원노동자 추모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지난 8월 22일부터 2박 3일간 일본 오사카 지역을 다녀왔다. 선배노동자들의 역사, 그 아픔을 배우고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일본으로부터의 사죄와 배상을 반드시 받아내겠다는 결심으로 2016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단바 망간광산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하고 매년 8월이면 일제 강제동원노동자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 추모행사에 참여한 김인숙 서비스연맹 부루벨코리아 노동조합 조직국장이 추모행사 참가기를 보내왔다.

단바망간 광산에 세워진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앞에서 추모식을 진행했다. ⓒ 강제동원노동자 추모 참가단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아는 것이 아니다.

한·일 양국 간의 분위기가 안 좋은 이때 조선학교에 우리 사물악기 전달을 위해서도 참가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참가한 8.22 ~ 8.24 2박 3일의 일제 강제동원노동자 추모행사. 이왕이면 분위기 좋을 때 가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일부에서는 ‘가지 말자, 사지 말자’ 운동을 펼치는데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꼭 가야 하는 건지 설전도 있었다 하고.

결론은 시대가 이러해서 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서로에게 더 감사했고 그런 마음에 미안함뿐이다. 다녀온 이후에도 그곳 모두 기억 속에 각인되어 ‘동포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물음만 계속된다.

몇 년 지나긴 했지만 ‘무한도전’에 나온 덕분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우토로 마을, 우리 노동조합에서 사물놀이 악기를 전달하기로 한 교토조선학교, 2016년 강제동원 노동자상을 세운 단바 망간광산, 마지막 마이즈루 우키시마마루 순난자 추도행사까지, 어느 한 곳 가슴에 남지 않은 곳이 없다.

첫 방문지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마을은 무한도전에 나온 탓인지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거의 다 허물어진 마을 생성 초기부터 있던 함바집과 낡은 건물들 한쪽에 정부와 우리 시민단체의 지원으로 지은 우토로 시영아파트가 어색하게 같이 공존하는 동네. 식민지시대 강제로 끌려와 노역하며 마을을 이루어 살다 전후에는 주둔 미군들에게 협박을 당하면서도 버티고 지켜 낸 우토로. 오랜 세월 차별을 견뎌 온 1세대 할머니는 아파트 이름에서 우토로를 빼자고 하셨단다. 우토로라는 이름으로 당신이 받은 차별을 아이들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2019년 지금과 1943년 우토로는 무엇이 바뀌었을까?

다음 방문 장소는 가기 전부터 제일 관심이 갔던 교토 조선 중고급 학교. 과거가 있기에 존재하는 곳이겠지만 전쟁과는 한참 먼 세대인, 재일조선인동포 3, 4세들이 온갖 차별에도 불구 우리말과 우리 역사, 우리 문화를 배우기 위해 편도 2시간이 넘는 등하교 시간을 감내하며 묵묵히 지키고 있는 곳. 지금은 153명의 학생이 전부이지만 일본 정부의 무상교육 배제란 노골적인 차별과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곳에 계신 분들은 어떤 신념으로 학교에 다니고 지키고 있을까? ‘요즈음 악화한 한·일 관계 때문에 올해는 못 오는 것인가 걱정했는데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반갑다’라며 이 문제로 일본 내에서 또 다른 차별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건 일본에 사는 우리가 극복할 문제라고 하시는 교장 선생님 말씀에 이 투쟁을 어떻게 이끌고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볼 때마다 감동이라는 공연을 작년에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원통하셨다는 부교장 선생님이 한을 풀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하신다. 곧이어 시작된 길지 않은 4부에 걸친 공연에 북쪽 색이 짙다며 난색을 보이는 일행도 있었지만 공연하는 내내 나는 남쪽에서는 이 학교를, 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고마운 마음 때문이었을까? 관람객 모두 눈물을 훔치며 생각들이 많아진다. 이곳 일본에 사는 많은 동포와 마찬가지로 여기 학생들은 남과 북 그리고 일본, 3개의 나라를 짊어지고 산다는데 우리는 그 짐이라도 될 자격이 있는 것인가? 우리말로 반갑게 인사하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 학생들을 보며 마주 웃으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단바망간 기념관 '이용식'관장님과의 간담회 ⓒ 강제동원노동자 추모 참가단

내년에는 박물관을 닫을지도 모르겠다는 단바 망간광산 이용식 관장님의 말씀을 듣고, 강제로 끌려와 억울하게 살다 가신 선조들을 기억해 강제동원 노동자 상은 세웠지만, 그분들의 억울함과 고향에의 그리움만 기억하고, 가족끼리 이곳을 묵묵히 지키고 계시는 관장님의 외로움을 우리가 간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익들의 살해 협박에도, 30여 년을 지켜 온 박물관이다. 일본 내 유일한 강제동원 노동자를 위한 광산 박물관이지만 조선인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 지원은 없다고 하니 재정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관장님을 설득해 노동자상을 세운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의 시작도, 마이즈루 우키시마마루 순난자를 위한 추도모임도 우리는 잊고 있던 동포들을 양심 있는 일본 시민들이 나서서 3~40년 동안 지키고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해오고 있다. 우키시마마루 순난자 추도모임의 요에 가츠히코 회장님은 일본의 조선 침탈 역사를 배우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을 공부하고 일본에서 전시도 하고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계신다. 40년 동안 추도모임을 하며 민단과 총련 대표를 한 자리에 모으고, 일본 정부와 세계에 우키시마마루 사건을 알리는 일을 하는 동안 우리는 아직은 참관자로 이곳을 찾고 있다.

마이즈루 우키시마마루 순난자를 위한 추도모임을 이끌어 가고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 강제동원노동자 추모 참가단

아베 정권이 제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친일적폐 청산을 외치면서도 일본의 경제침략과 만행에도 과거는 과거로 묻자고 하는 무리가 있는 한,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우토로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이용식 관장님은 계속 외로울 것이고 우키시마마루 순난자 추도모임에 참관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의 투쟁이 당장 큰 변화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동포들을 한 번 더 만나러 가고 손잡아 주고 안아주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몫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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