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활동가 150여 명, 미투 이후 노동현장의 변화, 민주노총 여성대표성 등 토론

2019 여성활동가대회 참가자 전체사진

9월 4일 천안 대명리조트에서 2019 민주노총 여성활동가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공공기관, 공무원, 자동차공장, 식품, 건설 등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50여 명이 참석했다. 민주노총은 2017년과 2018년 수련회로 진행된 행사를 활동가대회로 격상, 매년 여성 활동가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여성노동운동의 전망과 과제를 토론할 예정이다.
올해 활동가대회는 △여성노동자 7분 스피치 △미투운동 이후 노동현장의 변화 분석 △성평등한 노동조합 선전물 가이드라인 만들기 △민주노총 내 여성대표성 현황 분석 △조직 내 여성대표성 강화를 위한 규약 토론 등으로 진행됐다.
이번 대회를 준비한 민주노총 김수경 여성국장은 “내년이면 민주노총 설립 25주년이다. 민주노총의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여성활동가들의 각오과 결의를 다지는 자리”라고 취지를 밝혔다.


“여성노동자의 싸움은 기업 내 남성카르텔 깨는 것”

화학식품노조 파리바게트지회 이수진 보건복지부장

대회는 김명환 위원장 인사와 참가자 대표 발언으로 시작됐다. 정년을 3개월 앞둔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이노이 조합원은 “85년에 입사했을 때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생리휴가도 못 쓰고 제삿날 빼려고 해도 관리자에게 여러 번 부탁해야 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내가 생리휴가 쓰면 나이 60에도 생리하냐는 관리자가 있는데, 당신이 돈 줄 것 아니면 입 다물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래도 후배들에게 더 많은 걸 남겨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눈물을 삼켰다.
불법파견, 여성승진 불평등 문제 등으로 2017년 노조를 만든 화학식품노조 파리바게트지회 이수진 보건복지부장은 “여성노동자 비율이 훨씬 높은데도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은 보이지 않는, 이상하면서도 흔한 직장에서 일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파리바게트에는 주로 남성 노동자로 구성된 기업노조가 다수노조다. 파리바게트지회는 소수노조지만, 최근 파리바게트지회 임종린 지회장이 회사 근로자대표로 당선됐다. 하지만 회사는 기업노조에 대표성이 있다며 근로자대표의 지위와 권한을 전부 무시하고 있다. 이 부장은 “우리 투쟁은 기업 내 남성 카르텔 깨는 싸움이다. 파리바게트지회가 좋은 선례가 되어 더 많은 사업장의 남성 카르텔이 깨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미투운동 1년, 노동조합 있는 직장의 변화가 더 크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올 2~3월, 미투운동 이후 일터의 변화를 파악하고 노동조합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조합원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는 민주노총 내 15개 가맹조직, 380개 사업장 간부 및 조합원 2300여 명(여성 766명, 남성 1118명)이 응답했다. 그 결과를 민주노총 대구본부 김영숙 총무국장이 발표했다.
조사결과 미투운동이 일터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성적인 농담이나 여성비하적 언행이 줄고(52%), 회사 경영진이 성폭력 예방에 관심을 갖거나(38%), 성희롱 예방교육이 강화(37%)됐다.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회사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경우가 늘거나(15%), 업무에서 여성과 함께 일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늘기도(10%) 했다.
지난 1년간 성폭력 피해 문제제기 유무에는 24%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신고율의 3배다. 민주노총 사업장 네 곳 중 한 곳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것이며, 노동조합 있는 일터의 신고율이 평균보다 높다는 뜻이다. 또한 직장 내 성폭력이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민주노총 8개 가맹조직 간부 9명이 참여한 인터뷰 조사도 진행됐다. 인터뷰 결과 공기업, 공무원 등은 전반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이들은 긍정적 변화로 △성폭력 대응제도의 정비와 실효성 강화 △사회제도 진전 △규제기구 실효성 강화 등을 꼽았다. 부분적인 변화를 겪은 사업장은 학교, 병원, 금융기업 등인데 스쿨미투, 병원 4(공짜노동, 폭언폭행, 비정규직, 속임인증)아웃 운동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노총 김수경 여성국장은 “미투운동으로 노동현장이 변화했다는 것, 변화의 추동력에 노동조합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백래시가 존재한다는 것도 확인됐는데, 이를 넘어서는 것이 과제”라고 짚었다.

 

노동조합 선전물에도 여성을 드러내야

성평등한 선전물 만들기 조별 결과 발표

조별 토론을 통한 성평등한 선전물 만들기도 진행됐다. ‘민주노총 선전물, 돌아보고 나아가기’ 발제에 나선 민주노총 정나위 선전부장은 노동조합 선전물을 만들 때 업종에 따른 성별구분(제조업과 건설은 남성, 서비스는 여성 등)이 있거나 여성이 가사, 돌봄의 역할로만 표현되고 있는지, 투쟁 주체로 남성만 드러나고 있지 않은지 등을 점검해보자고 제안했다. 또한 그간 제작된 노동조합 선전물을 예로 들며, 다수 노동조합 선전물에 여성이 드러나지 않거나 성별분업이 그대로 담겨있다고 지적했다.
참가자들은 한 시간 가량 15개 조로 나눠 선전물을 제작했다. 색색 매니큐어 바른 손뿐 아니라 갈색이나 보라색 주먹, 전형적인 성별 업종이 뒤바뀐 노동자들, 중성적인 표현의 인물들, 싸우는 여성노동자 전국지도 등 다양한 선전물이 만들어졌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 대표자 88%가 남성
임원, 대의원 여성할당제 없는 곳 80% 넘어

둘째날인 5일에는 민주노총 여성대표성을 주제로 토론이 진행됐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올 5~7월, 민주노총 여성대표성과 성평등지수를 조사했다. 이 조사에는 10개 가맹조직에서 252개 사례가 수집됐으며, 참여 노조 중 여성 직원 비율이 절반 이상인 곳이 20%, 여성조합원 비율이 31~40%인 곳이 60%였다. 그러나 노조 대표의 성별이 남성인 곳이 88%에 달해 노동조합의 여성대표성은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원(위원장, 부위원장, 사무처장 등)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곳이 48%인 반면 여성이 절반 이상인 곳은 고작 8%였다. 대의원의 경우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곳이 33%, 1/3 미만인 곳이 58%였다. 교섭위원도 여성은 찾기 어려웠다. 한 명도 없는 곳이 38%, 1/3 미만인 곳이 55%였다. 이는 실제 교섭과정에서 여성의제가 전혀 논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여성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규약, 규정도 미비했다. 수집된 사례 중 73%가 여성할당 규정이 없었다. 임원 여성할당 규정은 85%, 교섭위원 여성할당 규정은 92%가 없었다. 민주노총은 전 영역에 30% 이상 여성할당을 둘 것을 제시하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여성할당제가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한시간 정도 진행된 조별토론에서는 여성할당제가 있어도 여성이 나서기 어려운 조건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점, 여성 간부에게 기대되는 복합적인 역할이 있다는 점, 주요 의결기구에서 목소리 내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는 점 등 현실에 대한 진단이 있었다. 대안으로는 여성할당제가 좀더 강제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이외에도 여성활동가대회 명의로 중집에 안건을 제안하거나 지속적인 교육과 여성활동가 모임을 해보자는 제안도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며, 자신도 지부장을 하면서 배우고 경험하며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나눈 여성 대표자도 있었다. 

대회는 5일 오후 12시 결의문 낭독으로 마무리 됐다. 참가자들은 △2020년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노동시장 내 성차별 해소를 민주노총 핵심과제로 설정할 것 △젠더 감수성 함양을 위한 교육 의무화, 역량강화 사업 진행 △사업과 예산 집행시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추동 △여성위원회, 성평등위원회 활동 강화 △2020년 3.8 여성의 날 전국노동자대회 투쟁 강화 등을 함께 결의했다.

 

성평등한 선전물 만들기 조별토론
참가자들이 조별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조별토론을 통해 만든 선전물
여성대회에 참석한 톨게이트 조합원들
여성활동가대회 단결의 밤
여성활동가대회 단결의 밤
여성활동가대회 단결의 밤
민주노총 김수경 여성국장
정년을 3개월 앞둔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이노이 조합원
"싸우는 여자가 잘 산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