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악-데이터3법 등 민생 역주행 법안에 가속도

 

20대 국회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 국회가 12월 10일로 막을 내리는 가운데 탄력근로제를 비롯한 노동개악법안과 데이터 3법, 패스트트랙 법안 등 여야의 쟁점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고 있다. 국회는 19일 본회의에서 120개 법안을 한번에 처리할 예정이다. 그러나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 법안들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기 보다는 정쟁의 거래수단으로 사용되거나, ‘깜깜이’ 졸속 처리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첩첩산중 노동개악

 

탄력근로제 기간확대, 주 52시간제 계도기간 확대, 특별연장노동시간 허용 확대 등 노동시간연장 관련 법안과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쟁점법안이다. 작년부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자는 정부 여당과 1년으로 확대하자는 자유한국당은 좀처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노동관계법 개정 입법안도 자유한국당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의 요구가 정부 여당의 안보다 반(反)노동적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노동개악에 한술 더 떠 ‘더 많은 개악’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정부안보다 더 늘려 1년으로 해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오다 최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합의하는 대신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3개월로 늘리자”는 안을 내놨다. 

선택근로제는 하루 노동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제도다. 출퇴근시간을 원하는 대로 지정하고 하루 근로시간 역시 8시간 이상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현재 1개월인 ‘정산기간’ 안에 노동시간의 총량을 맞추기만 하면 된다. 단기간에 업무의 집중이 많은 IT 업계 등이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를 꾸준히 요구해 왔다. 

선택근로제의 정산기간이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될 경우 하루에 몰리는 업무량이 더 커질 우려가 발생한다. 더구나 선택근로제 확대 관련 법안은 휴식시간 의무화 같은 최소한의 건강권 보호조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도 야근과 밤샘노동이 빈번한 IT업계의 경우 3개월간을 ‘크런치모드’(개발 마감을 앞두고 철야 작업 등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를 이어가는 셈이다. 

ILO 핵심협약을 빌미로 제출된 노동관계법 개정 정부입법안도 난맥상에 놓여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정부입법안 자체가 ‘노동개악’안이라며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이에 대해서도 ‘더 많은 개악’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은 쟁의행위 중 대체근로를 전면허용하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신보라 의원도 “3회 이상 쟁의행위를 한 경우 행정관청이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받아 해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해 환노위에 계류중이다. 

자유한국당이 극단적인 노조파괴법을 비롯해 노동개악안을 계속 내놓으며 여야합의를 뒤로 미루는 까닭은 ILO 핵심협약 비준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속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표면적으론 자유한국당이 당론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과 ILO가 권고하는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에도 반대입장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총선 전에 정부 여당이 ILO 핵심협약 비준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여야가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합의하지 못하자 정부는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18일 오전,  ‘주 52시간 근무제 보완책’을 발표했다. 주 52시간제 위반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유예하고 긴급 재해-재난 시 예외적으로 허용하던 특별연장노동을 최대한 확대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노동시간단축 기조를 폐기하고 기업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했음이 드러났다. 실제로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지난 13일 “주 52시간 제도는 경직된 제도”라며 “주 52시간제 도입에 찬성한 것을 많이 반성하고 있다”며 노동시간 단축기조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정부여당과 자유한국당이 정책 방향은 같으면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갈등이 정치적 계산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게 증명된 셈이다.  

여야의 입장차이가 정치적 이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극적 타결’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더구나  패스트트랙 법안, 검찰개혁법안, 한미방위비분담금 인상 협상 등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정치 쟁점이 12월 초에 몰려있어 ‘노동관계법안’을 여야가 ‘거래품목’으로 주고받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새, ‘데이터 3법’은 일사천리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의 데이터 3법의 핵심은 개인정보를 기업이 산업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개인정보가 기업에게 활용되면서 개인정보의 상품화가 이뤄진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비쟁점 법안이라 본회의 통과까지 무리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법안소위를 열어 데이터 3법의 모법(母法)으로 불리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19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었지만 관련 절차의 지연으로 19일 통과는 무산됐다. 그러나 여야간 이견이 없는 비쟁점 법안인만큼 다음 본회의에서 차질 없이 통과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용정보법은 다음번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일부 이견을 합의했고 수정안을 검토 중이다. 정보통신망법은 과방위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과방위 예결소위가 늦어지면서 정보통신망법 처리가 지체되고 있지만 이 역시 통과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비쟁점법안’이라 불리는 데이터 3법이 대중일반에게 전혀 알려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의 금융, 신용정보, 건강정보, 유전정보 등 민감정보들이 기업에 활용될 수 있게 하면서 국민 개개인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법안이지만, 공청회 한 번 열리지 않은 채 사회적 논의 없이 입법 절차가 진행됐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5명 중 4명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추진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다. 여론조사에 응답한 이들은 개인정보법 상 가명정보의 기업 제공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대다수가 추진 사실조차 모르고 내용에도 반대하는 법안이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다.  

▲ ⓒgettyimagesbank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한 가명 정보를 기업이 본인의 동의 없이 통계 작성, 연구 등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가명정보’란 추가 정보를 사용하지 않고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가명조치)한 개인신용정보다. 그러나 빅데이터를 통한 재식별이 얼마든지 가능해 특정인 식별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재식별을 통해 드러난 개인정보는 기업에 의해 ‘상품’으로 활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법안심사 과정에서 정보를 ‘산업적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는 문구는 빠졌지만 산업활용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기업이 개인정보를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창구가 여전히 열려있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의 통과가 불러올 대표적 파장으로 개인 건강정보의 유출이 꼽힌다. 이 법이 통과되면 병원, 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유한 각종 의료정보가 가명정보로 기업에 공개된다. 건강정보와 처방, 복약 정보 등이 포함된 의료, 건강정보가 다른 정보와 결합될 경우 개인을 특정하기 용이해지는데, 이는 보험사, 병원이 가입거절, 보험료차, 지불거절 등에 활용할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된다. 결국 개인정보를 기업이 활용하게 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이 지게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나아가 신용정보법과 정보통신망법까지 통과되면 개인의 금융 신용정보가 마구잡이로 거래되고 이를 이용한 데이터 범죄에 고스란히 노출될 가능성도 발생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개인정보보호법을 비롯한 데이터 3법이 추진은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화 전략을 이행하기 위해 기업들의 요구를 담아 추진하는 개인정보 규제 완화법”이라 비판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원격의료를 통해 수집되는 건강정보나 건강관리 서비스업체가 판매하는 기기를 통해 수집되는 건강정보가 송두리째 기업에게 넘어가는 것이 합법화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5월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에서 공공기관이 보유한 의료 빅데이터를 민간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개인의 민감정보를 기업에게 넘겨 의료영리화를 추진하는 법안이 국민 대다수가 모르는 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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